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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산시민예술단 박문원 단장의 인간승리 스토리
글 : 오성렬 / poi3275@naver.com
2026.03.03 10:39:47 zoom out zoom zoom in facebook twitter kakaotalk kakaostory


 

아코디언 연주 중인 박 단장


필자가 지난 16년에 걸쳐 매거진군산을 통하여 만나 본 군산의 인물들만 해도 얼추 5백여 명에 이른다. 정치인, 경제인, 교육자, 문화예술인, 자영업 등 다양한 분야의 천태만상 삶을 취재하면서 자연스레 인맥도 넓어졌다. 그 많은 사람들은 생긴 모습만큼이나 삶의 모습도 제각각이었다. 때론 상식적으로 이해가 되지 않는 별난 경우도 있었는데 그 모두가 필자에게는 소중한 추억으로 남고 있다.

 

필자가 최근 알게 된 군산시민예술단 박문원 단장(75)의 우여곡절 인생 스토리도 그 중 하나로 남을 것이다. 체구는 작지만 다부진 입매와 살아있는 눈빛부터가 범상치 않다. 나운동 26빌딩 건너편 쪽 도로변에 있는 남성광고기획사가 그의 사업체이다. 타고난 뚝심과 재능으로 사업적 기반을 잡으면서 실력 있는 아코디언 연주자가 되어 예술단 단장에 이르기까지 그가 걸어온 삶의 여정은 그야말로 한 편의 드라마라 해도 과언이 아닐 듯싶다.

 

그는 고창 대산면 출신이다. 조부님은 서당 훈장이셨지만 집이 너무도 가난했다. 초등학교 졸업 후 군산중학교를 가고 싶었지만 당장 군산까지 갈 교통비조차 없는 집안 형편으로서는 꿈같은 얘기였다. 어쩔 수 없이 고향의 대성중학교에 입학했다. 그는 글쓰기를 배웠고 재주도 있었다. 2 때 쓴 단편소설이 당시 학원사 잡지에 실렸다. 뜻밖에도 익산 남성고등학교에서 문예부문 특기생으로 입학을 허가했다. 그는 학비를 벌기 위해 신문 배달 등 고학을 하면서 책과 교복은 빌려야만 했고 잘 곳이 마땅치 않아 이곳저곳을 전전하거나 학교 양호실을 이용하는 등 어린 나이 그의 학교생활은 그야말로 풍찬노숙의 상황이었다 .

 

필체가 좋아 선생님의 출석부 글씨를 도맡아 쓰기도 한 그는 학원사의 학생 기자로 활동했다. 학교에 매점이 설치되면서는 학교 측의 배려로 매점의 운영 일을 맡으며 다행히 학비도 면제 되었다. 학교 관사에서 잠을 자기도 하고 학교 도서관에서 세계문학전집 등 많은 책을 읽으며 문학적 소양을 길렀다. 객지에서 고등학교를 다니는 동안 가난했던 집으로부터의 지원은 단 한 푼도 없었지만 그는 결코 환경을 탓하거나 좌절하지 않았다. 오히려 어떻게 해서든지 배워서 성공하리라는 불굴의 뚝심으로 그 어린 소년은 더욱 단단해져 가고 있었다.

 

졸업 후 그는 익산 삼남극장에서 간판 그리는 것을 배웠다. 이것은 후일 그의 인생에 변환점으로 작용한다. 손재주가 남달랐던 그는 군 입대 후 부대의 모든 간판을 도맡아 그렸다. 운전병으로 복무하면서 독학으로 일본어를 공부, 일본어 언어 자격 3급도 취득했다.

그러다가 우연한 기회에 교정직 공무원 시험 정보를 듣게 된 그는 군 생활 중 응시, 제대 한 달 후 합격 통보와 함께 1967년 군산교도소 근무 발령을 받기에 이른다.

 

교도소 재직 중 그는 부업으로 광고업을 했다. 필체도 좋았고 간판 일도 해왔던 터라

그의 적성에 딱 맞는 일이었다. 교도소는 특성 상 시설물이 많다보니 그에 따른 각종 간판, 표지판, 안내판, 부착물 등이 대량으로 필요한 기관이었다. 그는 자신의 직장인 군산교도소는 물론 타 지역 교도소에서도 주문이 들어올 정도로 신망을 얻어 일거리가 늘어갔다. 경상도를 제외한 전국의 교도소에서 주문이 들어왔다. 수주 금액만 해도 최소 수십 만원에서 수천만, 때로 억대를 상회하기도 했다. 그가 이렇게 사업적 성장을 이루게 된 것은 철저히 발주처에 신뢰를 쌓은 덕분이었다. 그는 지금도 약속과 신용을 인간관계에서 최우선 가치로 여긴다. 자신이 맡은 일에 대해서는 어떤 일이 있더라도 차질 없이 이행하고 철저히 약속을 지킨다. 사업 시작 이래 지금까지 이 원칙을 단 한 번도 어겨 본 일이 없다. 그러다 보니 군산의 대기업인 S제강을 비롯해서 법무부 관련 정부기관과도 오랜 거래가 지속되고 있다.

 

재직 중 타고난 향학열로 방송통신대 국어과를 졸업하고 군산대 대학원에서 고대소설 구운몽 논문으로 국어국문학 석사를 전공한 그는 2011년도 들어 34년간 봉직했던 교정직 공무원을 정년 퇴직했다. 자신의 사업체인 나운동의 남성광고사에서 거래처 지인을 만나며 시간을 보내기도 하고 영업시간이 끝난 후엔 30여년 전 인터넷 강의로 익힌 아코디언을 연습한다. 그의 사무실엔 그가 수십 년째 후원하고 있는 초록우산 어린이재단으로부터 받은 명예의 전당 후원자 선정패를 비롯하여, 전북도지사상 등 각계의 상패와 상장이 비치되어 있다.

 

그가 즐겨 연주하는 레퍼토리는 근대 가요인 감격시대, 선창, 찔레꽃, 청춘의꿈을 비롯하여 대지의 항구, 신사동 그사람, 홍콩아가씨, 나이야가라 등을 망라한다. 낭만 어린 그의 연주는 작년 애스타티비(AESTAR TV) 레전드 전국 왕중왕전 연주부문에서 시니어 대상이라는 영예를 안겨주었고 이 유튜브 방송은 해외에서도 인기를 더해 조회수 1위에 오르는 기염을 토함으로써 현재도 꾸준히 10권 이내에 자리할 정도로 인기를 누리고 있다.

 

작년 1월 군산시민예술단(이하 예술단) 단장으로 취임한 박 단장은 해야 될 일이 또 하나 늘었다. 지난 2021년도 창단한 이후 부침을 면치 못하던 예술단이 박 단장을 새로운 리더로 영입한 것이다. 본래 맡은 일에 전력을 다해 성과를 도출하는 성격답게 그는 취임 초기부터 고문에 함정식님, 사무국장에 가수 혜민을 임명하고 연습실 환경을 정화하는 등 예술단의 면모를 일신하기 위해 발 벗고 나섰다.

 

송현숙과 빅밴드를 비롯하여 남녀 가수들, 무용단(밸리댄스), 난타, MC등 약 25명으로 구성된 예술단은 시·도 지원행사(문화예술지원사업)를 비롯하여 주간보호센터, 요양병원 등을 찾아 연간 수 회에 걸쳐 봉사활동에도 열심인데 올해 들어 사회자와 일부 가수들을 새롭게 영입, 요청이 있는 곳이면 어디든 찾아가겠다면서 보다 폭넓은 활동의 기대감을 주고 있다.

 

가난한 어린 시절을 보내며 배움의 꿈을 키워 온 박문원 단장, 성공을 위해 한 눈 팔지 않고 치열하게 살아온 그를 보며 떠오르는 말이 있다. “된다는 사람은 방법을 찾고, 안 된다는 사람은 핑계를 찾는다는 말이 그것이다. 그에게 핑계는 없다. 목표가 정해지면 좌고우면하지 않고 뚝심으로 밀고 나간다. 대체로 어떤 일을 함에 있어 여건이 맞지 않는다는 등 온갖 이유로 포기하는 경우가 많으나 그는 일단 부딪치고 여건은 나중에 만들어가는 스타일이다.

 

그래서 철부지 소년 시절부터 집을 떠나 자기 힘으로 대학원까지 마쳤고, 공직자로서 국가를 위해 봉직하면서도 사업적 기반을 다졌으며, 독학으로 아코디언을 익혀 예술단 단장으로서 사회에 봉사하는 알찬 인생을 구가하는 게 아닌가 한다. 그러면서도 사회적 취약계층, 도움을 필요로 하는 사람에 대한 배려도 잊지 않는다. 장미꽃을 나누어 주었더니 그 향기가 내 손 안에 남더라라는 봉사의 보람을 표현한 말은 그에게 잘 어울리는 말이 아닌가 한다. 군산시민의장 수상자이면서 한국아코디언협회 전북도지부 회원으로, 장애인인권연대 군산지회 이사로, 한국예총 군산지회 회원으로, 군산시민예술단 단장에 이르기까지 지역사회 발전에 기여하고 있는 그에게 더 큰 보람과 행운이 같이 하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군산시민예술단

군산시 미원로27 2F(삼학동)

단장 010-3659-309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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