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군산의료원 이상암 신경과장
군산의료원 이상암 신경과장의 쓴소리·바른소리
뇌전증과 수면장애 환자들에게 희소식
아픈 사람은 슬프다. 슬플 뿐만 아니라 외롭고 쓸쓸하다.
아픈 걸 치료하려면 의사를 잘 만나야 한다.
“서울의 대학병원에서 근무할 때는 환자를 치료하는 게 최우선의 과제였다면 지방 병원에서는 환자들과 관계를 잘 맺는 게 우선이라고 봤어요.”
그렇지만 환자들에게 ‘필요 없는 약을 먹지 말라’고 단호하게 말하는 게 바로 군산의료원 신경과 이상암 과장이다.
서울아산병원에서 정년을 맞이하고 군산의료원에서 환자들을 만나고 있는 이상암 박사. 그는 대한민국이 자랑하는 신경과 분야의 석학이다.
뇌전증과 수면(잠) 장애를 겪는 환자들이 정말 좋은 진료를 받을 기회가 마련됐다.
외롭고 힘든 환자들에게 의사는 ‘하나님’
“대학병원에서는 중증 질환에 대하여 어떻게 치료해 줄 것인가의 문제가 가장 크거든요. 환자와 의사의 관계도 중요하지만 어렵고 힘든 질환의 처치가 가장 우선이었죠.”
연세대 의대를 졸업하고 1993년 울산대 의대 서울아산병원 신경과 임상강사로 시작, 2024년 정년을 맞을 때까지 근무했다.
군산에 내려와 환자들을 돌본 지 1년이 지났다.
“의료원에 오는 환자들의 경우 대부분 병이 있어서 치료하러 오는 게 아니고, 병이 없는데도 ‘아프다’라면서 오는 분들이 많더라고요.”
서울아산병원이었다면 ‘여기서는 치료할 게 없다’라고 돌려보내면 되는 일이었다.
그런데 여기에서는 그렇지 않았다. 중증 환자들이 아니라 생활형 환자들이기에 대학병원과는 눈 높이가 다르다고 봤다
“의사의 눈으로 보면 아픈 게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으나, 내원한 분들은 ‘아프다. 아프다’라고 하더라고요. 그래서 1차 진료를 책임질 수밖에 없다고 마음을 정리했죠.”
지방 병원에서는 치료를 잘해야만 명의가 되는 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환자들 대부분이 진료하는 의사가 자신의 증상을 자세히 설명해 주는 걸 원한다.
외롭고 힘든 환자들에겐 의사가 바로 ‘하나님’이기에 그렇다.
“필요 없는 경우에는 약을 먹지 마세요.”
“환자들과 눈높이를 맞추려면 친절이 중요하죠. 그러나 모든 환자들에게 똑같이 대할 수는 없다고 봐요. 의사는 한 명인데 환자들은 수십명씩 몰려 오는게 현실이잖아요. 증상도 엇비슷하고요. 왜 아픈지 물어봐야는데 그렇지 않더라고요”
공공의료 기관이어서 그런지 군산의료원 내원 환자들의 경우 일반적으로 나이가 많거나 보호자 없이 오는 경우가 다반사였다.
또한 대부분의 환자가 병원 한 곳을 다니는 게 아니라 습관처럼 이 병원 저 병원 다니고 있었다.
“이 병원, 저 병원에서 주는 한주먹이나 되는 약을 먹는다고 질환이 나아질까요?”
환자들은 ‘내가 무슨 약을 먹고 있는지, 왜, 이 약을 먹어야 하는지’ 그것을 생각하지도 않고 그냥 병원에서 주니깐 먹는 것이었다.
의료원 신경과장으로서 해줄 수 있는 말은 ‘약은 적게 먹어야 한다’라는 것이다.
“어떤 약이든 부작용을 수반하죠. 설명서를 보면 깨알 같은 글씨로 부작용을 적어놓잖아요. 약을 많이 먹을 경우 몸에서 부작용이 일어날 가능성이 커지죠.”
그래서 이상암 박사는 환자들에게 “필요 없는 경우에는 약을 먹지 말아라.”라고 말하고 있다.
‘저 의사 믿을 만하다’, 믿음을 주는 게 중요
1970년대~80년대는 ‘공업 입국’을 부르짖었던 시절이었다.
그래서인지 우수한 재원들은 공대로 진학했고, 의대는 그다음이었다. 지금과는 다른 분위기였다.
서울 토박이였던 그는 어릴 때부터 꿈이 의사였다.
“어릴 때 위인전을 많이 읽었는데, 그때 감명받은 게 ‘슈바이처’ 박사의 일대기였어요. 아프리카에서 환자 돌보면서 고생하는 걸 읽고 ‘정말 멋있다’라고 느꼈죠.”
연세대 의대에서 수련을 마치고 나와 곧바로 서울아산병원으로 향했고, 한 곳에서만 30여 년 동안 뿌리를 내렸다.
정년퇴직 이후라고 하지만 시골 군산의료원 근무는 쉽지 않은 결정이었다.
“군산의료원에서 아직은 잘 적응을 못하는 것 같아요. 의료원 가족과 환자들에게 미안한 마음이죠.”
지방 병원이나 서울의 병원이나 똑같은 의사이다. 의사는 치료가 목적이다. 환자로부터 신뢰받는 의사가 중요하다.
“의사라고 하지만 약으로 낫게 하는 질환은 그리 많지 않아요. 환자가 의사를 신뢰할 때 그걸 바탕으로 회복할 수 있다고 봐요. 환자들로부터 ‘저 의사 믿을 만하다’라고 믿음을 주는 게 중요하죠.”
황무지였기에 도전한 신경과
‘남을 도울 수 있는 일’을 한다는 게 마음에 들어 선택한 의사였다.
황무지였던 신경과를 선택한 건 그 분야가 도전할 만한 가치가 있다고 생각해서였다.
80년대~90년대의 경우 대학병원 또한 의료기기가 낙후되어 있었다. 화질이 안 좋은 CT가 겨우 있는 상태였다.
뇌 질환 중에서 CT로 알 수 있는 것은 뇌출혈밖에 없었다. 그런데 그 당시에는 뇌출혈이 워낙 흔했던 상황이라서 뇌출혈을 진단하는 데 있어서 CT는 마치 혁명적인 기기였다.
“그런 상황에서 신경과 질환은 알려진 게 없었어요. 기왕에 할 거라면 희귀질환 등 미개척 분야에서 시작하고 싶었죠. 처음부터 개업에는 생각이 없었고, 대학병원에 남으려고 작정했고요.”
신경과 환자들에 관한 한 독립적, 독자적으로 판단하고 치료를 할 수 있었다. 그런 부분이 매력적이었다.
군산의료원의 신경과장으로는 내원 환자들에게 부족함이 없을까 항상 뒤돌아본다.
대학병원에서 연구하고 교육하던 오랜 습관에서 벗어나려 하고 있으니, 변화는 시간문제이다.
“공공의료 기관에서 1차 진료를 담당하는 의사로서 마음의 전환을 시도하고 있어요. 아직 습관이 배지 않아 시간이 필요하겠으나 지켜봐 주세요.”
사회적 고립 ‘간질’→‘뇌전증’으로 바꾸는 데 큰 역할
한국 사회에서 마치 이상한 사람으로 낙인찍어왔던 ‘간질’.
환자 자신도 간질이라는 병명을 드러내지 않는 게 일반적이었다. 이 용어를 없앤 주역이 바로 이상암 박사이다.
간질은 지난 2010년 대한의사협회 의학용어 집에 정식으로 ‘뇌전증’으로 기록되었다. 그리고 2014년 우리나라 법령에서 사용하는 공식 용어로 채택되었다.
대한뇌전증학회 사회위원회 위원장(2007년~2011년, 2015년~2020년) 시절, 간질 환자들의 사회적 고립을 수반하는 이 병명을 바꾸려고 노력한 결과였다.
이런 노력으로 이상암 박사는 예전 ‘장미회’라고 불렸던 환자들의 단체에 대한 뇌전증 협회로부터 2023년 ‘뇌전증 인식 재고 특별공로상’을 받았다.
또한 지난 2016년 대한 신경과학회 연구자상, 2018년 대한수면학회 학술상을 받았다.
2010년부터 영문 잡지 ‘저널 업 크린컬뉴올로지(Journal of Clinical Neurology)’ 편집장을 맡아 고생도 많이 했다.
특히 2024년 은퇴하기 10년 전부터 SCIE 연구 논문을 208편 이상 쓰는 등 왕성한 연구 실적을 기록했다.
대한 신경과학회 용어 위원장(2008년~2010년), 대한뇌전증학회 부회장(2011년~2013년), 대한뇌전증학회 부이사장(2018년~2020년), 대한 수면 연구학회 회장(2013년~2014년), 대한수면학회 회장(2015년~2016년)을 지냈다.
대한 신경과학회 용어 위원장(2018년~2010년)을 하면서 의학한림원 의학용어 및 표준화위원회 위원으로 봉사했다.
약 10년 단위로 용어집을 만드는데 재임 기간에 ‘용어집 6판’을 만들었다.
세상 밖으로 나갈 땐, 목판화 감상과 수집
이상암 교수의 유일한 취미는 목판화 감상과 수집이다. 의사가 아니라면 박물관 큐레이터라는 살짝 감상적인 직업을 갖고 싶었다.
휴식을 가질 때면 일본의 목판화에 주목했다. 일본 사람들, 혹은 외국인들이 한국의 풍물을 주제로 목판화를 만들었는데 그 작품을 구입하기도 했다.
영국에서 태어난 ‘엘리자베스 키스’가 1925년에 만든 「평양 동문」 작품이 있는데 ‘최애’ 작품으로 꼽는다. 같은 작가가 1921년에 만든 작품 「결혼 축하연」도 마찬가지로 아낀다.
이 작가는 가족의 초청으로 일본에 머물다가 일본과 한국, 동남아를 다니면서 민속 분야의 작품을 많이 남겼다.
요시다 히로시 작가가 남긴 「평양 대동문」 작품도 좋다. 평양의 동문을 다른 배경에서 표현한 작품이며, 당시의 생활상 등 풍속을 가늠할 수 있는 수작이다.
1935년도의 가와세 하스이 작가가 남긴 「노인」 목판화도 있다. 원색으로 만든 작품인데, 원색을 찍어내려면 몇 장의 목판이 필요했을 것으로 짐작된다.
목판화는 목판을 만들어 종이 혹은 비단 등 재료에 찍어낸 작품을 말하는데 매우 귀한 예술 작품이다.
폴 자킬레 라는 작가와 윌리안 메이밀러 작가의 작품도 주목했다.
지금까지 80여 점의 작품을 소장하고 있는데, 전시회를 가질 생각도 하고 있다.
“종이에 그림을 새긴 형태로 보관 중인데, 전시하려면 작품마다 프레임을 만들어야 하는 등 절차가 좀 까다롭더라고요. 의료원에서 일반 시민들에게 전시하는 것도 생각해 봐야죠.”
의사와 환자가 신뢰를 쌓는 게 중요
서울아산병원에서는 연구가 우선이고 울산대 의대생들 교육, 그리고 마지막이 진료였다.
그런데 군산의료원에서는 진료 이외에는 다른 할 일이 없다. 환자들은 많지만 어쩌면 단순해졌다.
“의사들이 좀 냉랭한 감이 없지 않고, 소통에 문제가 있는 경우도 있다고 봐요. 저의 경우도 다르지 않겠죠. 중요한 것은 환자들이 자신의 병에 대하여, 치료에 대하여, 약에 대하여 의사들에게 물어보는 걸 게을리하지 말아야 한다는 점입니다.”
의사와 환자가 신뢰를 쌓는 게 중요하다.
내원 환자들의 경우 오늘 검사한 결과의 의미가 뭔지, 약은 왜 먹어야 하는지, 의사가 얘기하지 않으면 그때그때 물어봐야 한다.
“의사의 처지에서 보면 환자가 너무 많은 편이지요. 군산의료원도 마찬가지이고요. 의사들은 비슷비슷한 환자들을 많이 보게 되는데, 같은 병증이 있는 환자들에게 기계적으로 똑같은 말을 하기가 쉽지 않거든요.”
의사로서 올바른 태도도 아니고, 또한 소홀히 하면 안 되는 일이 바로 기계적인 응대이다. 많은 외래 환자들을 진료하다 보면 생기는 부작용이다.
“제가 의사로서 환자들에게 하고 싶은 말은 ‘물어봐라, 아픈 곳은 더 물어봐라.’ 그러면 소상히 설명해 줄 것이라는 말이죠.”
묻는 데 용감해야 자신의 병을 알 수 있다.
군산의료원뿐만 아니라 지방에 거주하는 환자들은 약을 너무 많이 먹는 것 같다.
병원의 역할도 중요하다. 환자들의 약을 줄이는 게 중요하다. 너무 많은 약을 처방 받는 현실이 안타깝다.
“환자는 묻는 데 용감해져야 합니다. 의사가 얘기 안 한다고 가만히 있으면 안 되고요. 자신의 증상이나 복용하는 약이 있다면 그게 뭔지 알 때까지 물어보길 권합니다.”
만약 5가지 증상으로 복용하는 약이 있다면 그 약이 왜 필요한지 물어봐야 진료하는 의사가 알려준다.
물론 약자인 환자들로서는 쉽지 않은 일이다. 그래도 물어봐야 자신의 병증을, 약의 효용을, 처방이 맞는지를 알 수 있다.
“의사에게 물어보는 데 용감해지면 자신의 병증을 좀 더 알 수 있습니다. 물어보는데 용감해 지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