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에 아파트를 나설 때마다 쓰레기 분리 수거장을 지나게 된다.
분리 수거장에 적여구산의 형국으로 쌓인 쓰레기를 보면서 자연스레 드는, 아니 들 수밖에 없는 생각! 저 쓰레기들은 다 어디로 가는 걸까? 게다가 생각은 ‘꼬꼬무’로 이어져, 우리 아파트 단지에서 배출되는 양만 해도 저 정도인데 군산과 전북 그리고 한국 사회가 쏟아내는 하루 쓰레기양은 과연 어느 정도일까? 아연한 생각이 안 들 수가 없다.
더욱이 하루 이틀도 아니고 최소한 매일 저 정도 양의 쓰레기가 배출될 텐데 하는 생각에 미치게 되면, 인류가 쓰레기로 망할 수도 있다는 진단이 전혀 억측이나 궤변만은 아닐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실제로 “세계은행의 연구에 의하면 쓰레기의 문제는 우리들이 상상하는 것보다 훨씬 더 심각한 상태이다. 구체적으로 2016년 가정에서 버린 쓰레기의 양은 20억 1천만 톤으로 추산되며 우리들이 매일 내놓는 플라스틱 쓰레기는 에펠탑 100여 개 무게에 달한다고 한다.
그리고 특단의 조치를 취하지 않는다면, 2050년에는 가정에서 배출하는 쓰레기만 34억 톤에 달할 것”(10면)으로 예측하고 있다.
이와 같이 인류의 미래 운명에 상당히 중요한 변수로 작용할 수도 있음에도 불구하고 우리들은 쓰레기 문제의 심각성에 상응하는 관심은 부족해 보인다.
이번 독서 칼럼 대상 텍스트로 ????쓰레기의 세계사????를 소환하게 된 것도 그러한 맥락에서이다.
이 책은 쓰레기 발생의 역사와 자본주의 경제와의 연관성을 이해하기 쉽고 명확하게 밝히는 ‘쓰레기사 분야의 가장 탁월한 책’이라는 고평을 받을 정도로 쓰레기의 문제를 정치하게 탐사하고 있는 저술이다.
쓰레기의 역사를 근대 이전, 산업 시대, 대량 소비 시대 3부로 구획해서 톺아보고 있는 이 책에 의하면 ‘쓰레기의 역사는 기원전 1만 년에서 6천 년 사이에 시기에 시작되었다.
인류가 한 장소에 정착하는 생활을 하게 되는 그 시기에 이르러 배설물과 음식물 찌꺼기, 재나 부서진 도구들과 마주하게 되면서 쓰레기의 역사는 시작되었다고 한다.’(24면)
그 이후 현재에 이르기까지 쓰레기는 인간의 삶과 함께 하면서 ‘역사를 비추고 사회를 반영하는 거울’(11면) 의 역할을 하고 있다.
쓰레기의 역사에서 지각변동에 가까울 정도의 혁명적인 변화가 시작되는 시기는 ‘대량 소비의 시대’부터이다.
로만 쾨스터의 분류에 의하면 2차 세계대전 이후를 기점으로 하는 이 시기부터 쓰레기의 역사는 결정적인 변곡점을 형성하기 때문이다.
쓰레기의 역사 지형에서 ‘폭발하는 쓰레기’라는 다소 도발적인 아젠더가 그 시대적 정체성을 극명하게 압축하고 있는 바와 같이, 이 시기 들어서면서부터 쓰레기의 배출양은 그 전 시기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많게, 한마디로 폭발적으로 증가한다.
1950년대 이후 계속해서 증가하던 쓰레기의 양은 “쓰레기 시장이 천지개벽과도 같은 변화를 겪어야 했던 1980년대 시점에서”(239면) 겨우 정체기에 접어든다. 하지만 “2000년대 이후 인터넷 쇼핑몰이 증가하면서 증가 속도에 다시 가속도가 붙었고, 이러한 추세는 오늘날까지도 이어진다.”(241면)
1950년대 이후 쓰레기의 양이 폭발적으로 증가하게 된 데는 과잉 생산과 맞물려 “포장의 필요성이 증대되고 물류 체계가 발전하며 시작된 경제의 변화가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255면) 대량 소비 시대에 시작된 쓰레기 역사의 혁명적인 변화는 이 시기에 폭발적으로 증가한 쓰레기의 양에만 국한되지는 않았다.
배출량과 더불어 쓰레기의 구성 내용이나 수거 및 처리 시스템 또한 적지 않은 질적 변화를 겪게 된다. 구체적으로 대량 소비 시대 이전에는 “도시 공간을 깨끗하게 유지하고, 악취를 해결하고, 전염병을 방지하는 것이 우선”(240면)이었지만, 이제 쓰레기는 새로운 위험 요소인 환경 오염을 야기했으며 쓰레기 생산과 처리 방식에 대한 담론도 근본적으로 바뀌게 했다. 이로 인해 “대량 소비와 쓰레기 생산의 상관관계, 여기에서 벌어지는 환경 오염, 문제를 해결하는 과정에 존재하는 다양한 난관에 관한 지식을 포괄적으로 논의하는 쓰레기 신드롬이 일어났다.”(240면)
오늘날 쓰레기의 문제는 서구 선진 국가만의 문제는 아니다.
도시화와 산업화에 따른 서구의 근대적 생활 양식과 소비 문화가 표준으로 자리잡으면서 쓰레기의 문제는 전 세계적인 골칫거리로 떠오르게 되었다.
대량 생산, 대량 소비, 대량 유통, 대량 폐기를 반복하는 과정에서 양산될 수밖에 없는 쓰레기의 문제는 두 가지로 압축할 수 있다.
하나는 ‘쓰레기의 수거 및 처리 문제’이고 다른 하나는 ‘쓰레기의 소각이나 매립 문제’이다.
“1960년대 후반부터 쓰레기 수거 기술은 비약적으로 발전”(280면)했지만 쓰레기 수거와 처리 문제는 여전히 세계의 거의 모든 도시가 안고 있는 심각한 고민거리이다.
많은 사람들이 점점 육체적으로 힘들고 사회적 평판이나 인식이 좋지 않아 직업의 위계에서 아주 낮은 지위를 차지하는 쓰레기 수거 업무를 기피하기 때문이다.
“제 가족은 아바단에 살지만, 저는 이곳 라고스에서 제 ‘빌어먹을’ 일을 했습니다.
제가 어떻게 생계를 꾸리는지는 가족과 처가에 비밀로 했습니다. 저를 어떻게 생각할지 두려웠거든요......제가 어떻게 감히 제 일에 대해 말할 수 있겠습니까.”(288면)라는 고백이 웅변하는, 청소부라는 직업에 대한 사회적 낙인이나 혐오는 비단 나이지리아 청소부만의 문제는 아닐 것이다. 구체적으로 ‘인도에서 쓰레기 수거에 종사했던 대부분의 사람들은 불가촉천민이었고 일본에서는 심각한 범죄를 저지른 사람들에게 마을의 장로들이 히닌(非人)이나 에타(穢多)라는 낙인을 찍었는데 이들은 정해진 구역에만 거주해야 했으며, 시신 매장, 쓰레기 구덩이 비우기, 쓰레기 수거 등 불결하다고 여겨진 직종에만 종사할 수 있었다고 한다.’(288-289면)
하지만 “쓰레기 수거 시스템이 전문화되면서 청소부가 직업으로 인정받기 시작했고, 이들에게 안정적인 노동환경과 고정된 급여 또한 보장”(290면)되면서 그 정도의 노골적인 차별과 혐오는 사라졌지만 여전히 청소 노동자의 시회⸱경제적인 지위는 낮은 편이다.
그로 인해 열악한 노동 조건이나 낮은 임금 등에 대한 저항의 수단으로 청소 노동자들이 동원한 쓰레기 수거 파업은 적지 않은 불편과 충격을 주었다.
구체적으로 “쓰레기 수거의 중단은 거리 미관을 해치고 끔찍한 악취가 나는 것만이 문제가 아니었다.
아무렇게나 쌓인 쓰레기는 잠재적인 질병 진원지였다.
쓰레기에서 나오는 산성 물질은 피부와 호흡기 질환을 일으킬 수 있었다.
게다가 쓰레기는 질병을 옮기는 쥐와 해충을 끌어들였다.”(283-284면)
쓰레기의 소각이나 매립 문제는 수거 및 처리 문제 못지않게 아니 어쩌면 더 심각한 문제일 수 있다.
먼저 ‘전통적인 방식으로 아직도 많은 나라들에서 의존하고 있는 매립의 경우 대기나 토양 및 수질 오염으로 인한 주변 주민들의 건강을 위협하고 있다.
또한 인화성이 높은 쓰레기나 유기물이 발효되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화재의 위험성 또한 적지 않다.
1997년 9월 28일 콜롬비아 수도 보고타의 대형 쓰레기 매립지였던 도냐 후아나에서 침출수와 매립 가스 누출로 인한 대형 폭발이 발생하여 주변 지역의 주민 10만 여명이 중독, 화상, 호흡기 질환으로 고통을 받은 사고는 그 대표적인 사례이다. 최근에는 환경 정의에 대한 감수성까지 높아져 갈수록 매립지를 확보하는 문제는 거의 모든 나라가 고심하고 있는 사안이 된 지 오래이다.
이로 인해 매립의 대안으로 부상한 방식이 소각이다.
소각은 관련 기술의 발전으로 한때 한때 각광을 받기도 했다.
하지만 소각 방식 또한 소각장 건설 비용이나 유해 물질의 위험성 등의 문제로 인해 환경 단체들이나 해당 지역 주민들의 반발이나 저항에 직면하면서 어려움을 겪고 있다.
특히 적은 양으로도 암을 유발할 수 있는 위험물질인 다이옥신의 검출 문제는 환경 운동가들의 소각장 반대 시위의 트리거로 작용했다.’(293-317면)
사람들은 말한다.
직업에는 귀천이 없다고! 과연 그러할까? 이 말을 곧이곧대로 믿는 사람은 아마도, 거의 없을 것이다. 현실세계에서 직업의 위계나 서열은 너무나도 명확하기 때문이다. 직업에 귀천이 없다는 말은 귀천을 전제로 이루어지는 차별이나 혐오의 집단 무의식에대한방어기제나 위선일수도있을 것이다.
이 지점에서 한번 생각해보도록 하자.
열악한 노동 조건과 자신들에 대한 차별을 더 이상 용인하지 않고 청소노동자들이 일시에 일을 그만두게 된다면? 과연 어떤 일이 벌어질까? 하여, 자신의 집애서 나오는 쓰레기는 모두 각자가 알아서 처리해야만 하는 상황이 온다면? 끔찍한 악몽과도 같은 디스토피아적 상황이 아닐 수 없을 것이다.
이 세상에 하찮은 직업은 없다! 더불어 하찮은 사람 또한 없다는 말로 이 글을 매조지고자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