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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은 변할망정 그저 우리 것이 좋다는 토종 된장 같은 그 사람
글 : 오성렬(자유기고가) / poi3275@naver.com
2014.12.01 10:06:16 zoom out zoom zoom in facebook twitter kakaotalk kakaostory

 


 

서양 사람에게선 고기나 버터냄새가 당연하고 한국 사람에게선 김치나 된장 냄새가 당연할 터. 하지만 언젠가부터 외래 문물이 범람하면서 퓨전이니 뭐니 해대며 우리 것과 뒤섞이기도 함에 따라 갈수록 이의 구분을 헷갈리게도 하는데 무분별한 외래어에다 음식이며 문화며 남의 것이 대접을 받기도 하는 지금 세상은 때로 한국 사람에게서 버터냄새가 나고 이를 마치 세련된 것인 양 여기는 가관도 심심찮게 보게 된다. 하지만 세월이 아무리 변한들 그저 고향이 좋고 우리 것이 좋다며 언제나 구수한 된장 같은 사람이 있다. 40년 전 상경하여 이제는 서울 사람이 된지 오래건만 촌티가 여전하고 생각이며 말투며 고향 토박이 기질이 좀처럼 변치 않는 사람, 마침 볼 일로 군산에 내려온 ‘주)하이파워텍’의 김수곤(金輸坤/67)대표를 만나보았다. 

 

 


 

만나서 반갑습니다. 고향엔 자주 내려오시나 봐요?

제가 태어난 곳이 임피인데 선영도 그곳에 있고 처가도 군산이지만 모임이나 이런저런 일로 1년이면 열 번 이상은 내려오는 것 같네요. 

 

기계공구 관련 사업을 하시는 걸로 아는데 원래 그 분야 전공을 하신 건가요?

전공은 아니고요, 제가 군산초등학교와 군중,고를 거쳐 수산전문대 증식과를 졸업한 관계로 이후 도청 공무원으로 종패관리소에 첫 발령을 받아 사회에 첫발을 내디뎠습니다만 군 제대 후 결혼과 동시에 공무원을 그만두고 74년도 무렵 서울의 신신기계라는 회사로 전직한 것이 계기가 되었습니다. 이후 카플링 제조회사인 주)화성코리아의 영업이사 및 대리점 경영을 하였고 그래서 그쪽 분야를 잘 알게 됨으로써 지금의 사업으로 이어지게 된 것입니다.

 

‘하이파워텍’은 어떤 회사인가요?

제가 30년 째 이 업종 사업을 하고 있는데 기계장치에서 동력전달을 하는 데 있어 주요 부품 중 하나인 카플링을 취급하고 있습니다. 현재 세계적으로 미국, 영국, 일본, 독일 등의 제품이 뛰어난데 이를 수입하여 국내장치산업(발전소, 철강, 석유화학, 시멘트 등)과 기계제작회사에 판매 공급하고 있는 회사입니다. 그래서 관련 분야의 식견과 견문을 넓히기 위해 독일, 미국 등에서 해마다 열리는 세계기계박람회에도 여러 번 출장을 다녀왔고 외국 바이어들과의 교류도 지속적으로 갖고 있습니다. 

 

평소 남다른 애향인으로 알려졌는데 본인에게 고향의 의미는 무엇입니까, 그리고 얘기할만한 추억이 있다면?

제가 서울에 올라간 게 1974년도인데 그 시절만 해도 모두가 먹고 살기 힘든 때였습니다. 게다가 전라도 출신이라는 홀대를 겪다보니 항상 포근했던 고향이 그리웠지요. 고향이라는 단어만으로도 푸근함과 정겨움이 느껴지고 따라서 그러한 정서는 제 DNA의 바탕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중학생 시절 선산이 있는 임피에서 백부님이 농사를 지으셨는데 방학이면 그곳에 가서 사촌들과 작은 방죽에서 수영도 하면서 놀았고 백부님은 어린 저희들에게 꼭 할당된 농사일을 끝내야만 자유 시간을 주셨어요. 일하는 동안 땀도 많이 흘렸지만 힘든 일 뒤에 찾아오는 신났던 농촌의 시간들이 지금도 아스라한 추억으로 남아 있습니다.

 

서울에서 동향인 행사나 모임 등에서 활동도 하시는지?

재경 군산시향우회 회원으로 매해 열리는 한마음체육대회에는 꼭 참석하고 있고, 여타 이런저런 동향인 모임이나 동창회 등에도 특별한 일이 없는 한 참석하는 편입니다. 

 

군산중,고 재경총동창회 사무총장도 역임하셨지요? 

어린 시절부터 친구를 좋아해서 모교 동기(통합39회) 모임의 총무를 20년 이상 맡다보니 자연스레 선, 후배들과 친하게 교류하게 되었고 동창회 행사 때마다 봉사하는 일을 해선지 지난 2004년도에 사무총장 직책도 역임했습니다. 그래선지 저에게 마당발이라는 별명이 붙기도 했는데 오랜 동안의 사업으로 그 분야 인맥도 넓지만 지인들의 애경사에 빠지지 않고 각종 행사나 모임 등을 주관하는 일이 많다보니까 인간관계가 폭넓어진 것은 사실입니다. 

 

 


 

두 자녀를 모두 국악을 전공케 한 것으로도 우리전통문화에 대한 애정이 읽히는데.

음악은 어려서부터 좋아해서 중학생 시절 전축이 있던 친구와 함께 음악 감상 서클을 만들어 돌아가면서 해설도 할 정도로 취미가 컸지요. 나이 든 지금은 군산 출신 걸출한 풍류피아니스트 임동창, 그리고 장사익 류의 연주를 좋아하게 됐지만 돌이켜보면 그때는 뭣도 모르면서 당시 유행하던 팝송이나 클래식 등을 감상하면서 따라 부르기도 했던 것 같은데 나이 불혹을  넘기면서부터 우리소리가 좋아지기 시작하고 진작 접해보지 못한 아쉬움이 크더라고요. 제가 딸만 둘인데 그래서 딸아이에게 얘기했더니 그 애들도 저와 같은 생각이었는지 모두 국악을 하겠다는 겁니다. 그래서 고교 때부터 큰 아이는 대금을, 작은 아이는 거문고를 익혔고 대학에서도 이를 전공하고 대학원까지 마쳤는데 무엇보다도 우리 전통문화야말로 우리의 애정과 열정으로 지켜나가지 않으면 안 된다하는 생각이 컸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지금 세대가 더욱 열심히 공부해서 후대에게 그 가치와 맥을 전승하는 것은 의미가 클 뿐만 아니라 의무라는 생각도 듭니다. 

 

평소 역사나 종교, 사회과학 등 인문학에 관심이 많고 관련 서적도 탐독하는 것으로 알고 있는데 어떻습니까.

인문학은 본질적으로 인간에 관한 탐구인데 각 나라마다 정의는 다르게 해석되고 있습니다. 우리의 경우는 인간의 정신, 문화와 역사 등을 총칭하는 분야로 알고 있고 이를 통하여 인간 본연에 대한 성찰과 진보가 이루어진다고 믿습니다. 특히 역사는 승자의 논리로 일관하고 있다는 점에서 저 나름으로 보다 균형 있는 시각을 갖고 싶었고, 승자가 독식하는 역사가 아니라 민중의 요구와 시대의 사명이 조명되는 영역이어야 한다는 생각입니다. 종교만 해도 근본주의에 매몰된 독선적인 경전 해석으로 타 종교를 폄훼하면서 우리의 토속신앙문화 자체가 말살된 감이 있는데 참으로 안타까운 일입니다. 힘과 이념의 논리만이 작용하는 지금의 세계화 시대 속에서 살아남으려면 군사력이나 경제력도 중요하지만 사실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우리 민족만의 고유한 정신문화와 문화적 끈기, 그리고 동질성 아니겠습니까. 저는 그것에 관해 공부하면서 인간의 보편적 정의와 양심에 반하지 않는 균형적 관점을 찾고 싶었고 그러다보니 자연히 책을 많이 접하게 된 것 같습니다.     

 

최근 군산에 내려와 보고 느끼신 게 있다면?

어릴 적 군산을 떠난 사람들에게는 격세지감을 갖게 할 정도로 변화를 맞고 있다는 느낌입니다. 방대한 국가산업단지며 새만금 등 면적만 해도 옛날과 비교가 안 될 정도이고 박물관과 예술의전당 등 특히 문화 공간과 예술인들의 행사가 많아져 문화적 활기가 느껴지고 있고, 또 하나 도내 어느 곳에서도 볼 수 없는 월간지 ‘매거진군산‘이 발행되고 있어 이 한가지만으로도 고향에 대한 큰 자부심을 갖게 합니다. 따라서 우리 군산의 문화적 수준은 국내 타 도시 어디와 비교해도 뒤지지 않겠다는 생각입니다. 그런 관점에서 앞으로도 우리 군산은 양적인 팽창보다는 시민들 모두 활기와 정감 넘치는 아담한 문화 도시로 발전해 나갔으면 합니다. 그리고 저도 이제 은퇴를 준비할 나이가 된 만큼 후일 고향의 발전에 미력이나마 힘을 보탤 각오도 되어 있다는 것을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읽었던 책 중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책을 든다면? 그리고 취미와 주량도 궁금하군요.

사실 지식을 얻고 감명을 받은 책은 많지만 ‘해방 전후사의 인식’을 들고 싶습니다. 여러 명의 학자가 공동 저술한 책인데 그 중에서도 현대사 부분에 있어 이영희 교수님의 명쾌한 논지가 적잖은 깨달음을 주었던 것 같습니다. 그리고 취미로는 젊어서부터 해 온 테니스와 독서를 즐기고, 주량은 소주 2병 정도면 기분이 좋더라고요(웃음). 

 

끝으로 향후 계획이라든지 부연하고 싶은 말씀이 있다면? 

고향을 떠나 40여 년을 타향에서 살았는데 먹고 사는 일에 매달리다보니 뒤늦게 철이 나는지 고희를 눈앞에 둔 지금 참으로 많은 회한이 밀려옵니다. 젊을 때 누군가 저를 이끌어 주는 ‘멘토’가 있었더라면 지금처럼 허전한 마음이 들지는 않을 거라는 부질없는 생각도 듭니다만 이제 남은 바람이 있다면 늙어가면서 그 누구에게라도 폐가 되거나 부담이 되는 존재로 살지는 말아야 되겠다는 생각이 큽니다. 그래서 조용히 건강이나 돌보면서 가끔씩 고향의 친구들이 보고 싶을 때면 군산행 버스에 몸을 싣고 내려와 좋아하는 벗들과 삼겹살에 막걸리잔 기울이며 한가로이 옛 추억담과 더불어 고담준론과 함께 인생사도 맘껏 나누고 싶습니다. 

 

오늘 말씀 감사합니다. 아무쪼록 건강 잘 챙기시고 사업도 번창하길 바랍니다. 

매거진군산도 더욱 더 멋진 잡지로 승승장구하시길 바랍니다. 저도 열심히 응원하겠습니다.

 

주)하이파워텍 

서울 금천구 시흥대로97. 유통상가11-124 

TEL 02) 804-01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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