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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의 쌀 빼앗으려고 다리 만든 도둑놈들!"
글 : 조종안(시민기자) / chongani@hitel.net
2013.05.01 14:46:52 zoom out zoom zoom in facebook twitter kakaotalk kakaostory

 


 

군산문화원(원장 이복웅)이 매년 시행하는 '제31회 우리 고장 향토문화 역사탐방'이 19일(금) 시작됐다.  주제를 ‘군산의 근대역사문화를 찾아’로 정하고 19일·20일, 26일·27일 모두 네 차례 떠난다.  첫날은 성산초등학교 3학년 학생 40명과 시민 40명이 참여했다.  오전 9시 대형버스 두 대에 분승, 내항에 도착한 탐방단은 이복웅 원장에게 군산의 개항(1899)과 일인이 폭발적으로 증가했던 당시 상황.  1905년 고정 잔교 1기를 설치하고 전마선을 이용해 쌀을 선적하다가 경술국치(1910) 이후 수탈을 본격화한 일제가 설치한 부잔교 4기에 대해 설명을 들었다.  

 

“저 뒤로 보이는 게 부잔교(浮棧橋)입니다.  ‘뜬다리’는 우리말이죠.  군산항은 조수 간만의 차가 6m~9m나 되기 때문에 대형 수송선의 접안이 어려우니까 호남의 쌀을 대량으로 반출하려는 일본이 이 다리(부잔교)를 만들게 되는데요.  물이 들어오면 연결된 쇠고리가 ‘삐거덕, 삐거덕’ 소리를 내면서 다리가 올라가고 썰물일 때는 내려옵니다.  1926년 6월 25일 사이토 총독이 참석해서 기공식을 하고 1933년 3월 부잔교 3기를 준공합니다.  또한, 부잔교 3기는 기선 3척 이상의 접안, 상·하역에 지장이 있어 부잔교 3기 하류에 제4 부잔교와 연결하여 3000톤급 기선 6척이 동시에 접안할 수 있도록 1936년에서 1938년까지 대형 부잔교 1기를 축조합니다.  이로써 군산항의 부잔교는 4기가 됩니다.  부잔교와 함께 철길을 중심으로 수많은 정미소와 쌀 창고가 지어졌고, 부둣가에는 쌀가마가 산더미처럼 쌓였습니다.  만석 이상 생산하는 정미소가 14곳, 그중 가등, 조일, 조선, 화강, 낙합, 육석 정미소는 5만석 이상 생산하는 대형 정미소였어요.  1934년에는 쌀 반출이 2백만 석을 넘었고, ‘쌀의 군산!’이라는 말도 그때 생겨났죠.  모두가 우리 힘이 약해서 당했던 비극입니다.”

 

이 원장의 설명에 진지한 표정이던 학생들은 놀란 토끼 눈이 되었으며 “우리가 놓은 것으로 알고 있었는데, 왜놈들이 만들었다? 남의 쌀을 빼앗으려고 다리를 만든 도둑놈들!”이라며 놀라는 아저씨도 있고, 공사가 진행 중인 군산-장항 대교와 착각하는 아주머니도 있는 등 시민과 어린 학생들 반응은 다양했다.   최아정 학생은 “선생님께서 말씀하실 때는 부잔교가 어디에 있고, 어떻게 생겼는지 궁금하고 설렘이 가득했어요.  그냥 다리인 줄 알았는데 물이 들어오면 위로 올라와서 뜬다리가 된다고 해서 놀랐어요!”라며 “우리나라가 더 강해지도록 공부도 열심히 하기로 다짐했다.”고 느낌을 말했다.  

 

 

정환희 학생은 자못 심각한 표정으로 “우리나라가 힘이 없을 때 일본이 쳐들어와서 쌀을 도둑처럼 가져갔다고 하는데, 다짐할 것은 우리가 힘을 길러서 힘센 나라가 되는 길이고, 저도 나중에 어른이 되어 일본이 또 쳐들어오면 힘을 모아서 싸울 것”이라며 각오를 다졌다.  허서연 학생은 “다리를 건너는데 나무 사이에 구멍이 뚫려 있고, 아래로 물이 보여서 무서웠어요. 그래도 재미있어요.”라며 “이제부터는 우리나라가 힘이 세져서 일본에 무엇이든 빼앗기지 않고 이겨야 한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가족이 함께 다시 와보고 싶다는 말을 덧붙이기도.
 

 


 

군산 신흥동‘일본식가옥’은 일본에서도 보기 드문 건물  

신흥동 ‘일본식가옥’(히로쓰가옥)에서는 김양규(88) 전 군산문화원장이 강사로 나섰다.  일본식가옥(국가등록문화재 183호)은 대농장주가 많았던 군산에서 보기 드물게 포목상을 해서 부(富)를 이룬 히로쓰 게이사브로가 1920년대 중반 재료를 일본에서 가져다 지은 건축물로 알려진다.  “마당에는 일본식 정원이 꾸며져 있죠.  히로쓰(廣津)는 임피 인근에 작은 농장을 경영하면서 군산부 협의회 의원을 지낸 인물이기도 합니다.  건물 형태는 근세 일본 무가(武家)의 야시키(屋敷) 형식 2층 목조주택(건평 100평)으로 일본에서도 보기 드문 대규모 건물입니다.  군산에 지어진 일식 주택의 특성이 잘 보존되고 있는 건물로, ‘야시키’란 실내외에 왕실처럼 모든 걸 갖춰놓은 저택을 말합니다.” 

    

김 전 원장은 “다시는 일본이 침략할 수 없도록 여러분이 공부도 잘하고, 부모님 말씀도 잘 들어야 한다!”고 덧붙이며 “어른들과 초등학생을 상대로 설명하려니까 눈높이를 어디에 맞춰야 할지 어렵다”고 해서 웃음을 선사하기도. 건축 면적만 100평이 넘는다는 대목에서는 어른도 학생들도 혀를 내밀며 놀라워했다.  탐방단은 일본식가옥에 상주하는 문화관광해설사에게 보충설명을 듣고, 식당으로 자리를 옮겨 군산문화원이 제공하는 점심을 맛있게 먹었다.  오후 첫 코스는 금강하굿둑 근처에 있는 채만식기념관.  탐방단은 소설 <탁류> 작가 채만식의 일생에 대해 이복웅 원장에게 미니강의를 듣는 것으로 오후 일정을 시작했다. 

 

 


 

“어른이 돼서 일본에 복수도 하고 보물도 지키고 싶어요!”

군산시 개정면 발산초등학교 뒤뜰에 있는 시마타니 농장 금고(국가 등록문화재 제182호)에서는 이진원 향토문화연구소장이 강사로 나서 야외 전시장을 방불케 할 정도로 수많은 문화재급 석물들이 전시되고 있는 이유와 고려 시대 ‘오층 석탑’(보물 276호)에 대해 설명했다.   “이곳은 일본인 대농장주 시마타니 야소야가 전국 각지에서 불법으로 수집한 문화재급 석물들을 보관(?)했던 장소입니다.  어디에서 가져왔는지조차 모르는 유물이 수두룩하지요.  저기 보이는 오층 석탑도 원래는 완주군 봉림사 터에 있었는데, 시마타니가 옮겨놓은 것으로 전해집니다.  저쪽 건물은 일제강점기 때는 금고로, 한국전쟁 때는 애국지사들을 감금하는 감옥으로 사용했던 가슴 아픈 사연을 간직하고 있지요.”  

 

 


 

수첩에 꼼꼼히 메모하면서 귀를 쫑긋 세우고 설명을 듣던 이준서 학생은 “발산리 오층 석탑이 우리나라 보물이라고 해서 좋긴 하지만 언제 일본이 또 쳐들어와 빼앗아 갈지 몰라 걱정된다”며 ”빨리 어른이 돼서 일본에 복수도 하고, 보물도 지키고 싶다“고 말했다.  우리 고장 향토문화 탐방단은 내항의 부잔교-위봉함(최무선 전시관)-구 조선은행-나가사키 18은행-구 군산세관-군산 근대역사박물관-일본식가옥-채만식 문학관-시마타니농장 금고(창고)-이영춘 가옥 등을 돌아보고 오후 3시 30분 첫날 일정을 마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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