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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이 아름다운 것은 봄이 있고, 그 봄이 가기 때문이다!
글 : 조종안(시민기자) / chongani@hitel.net
2013.04.01 18:04:51 zoom out zoom zoom in facebook twitter kakaotalk kakaostory

 


 

여울 김준기(69) 시인을 만나기 전 그가 운영하는 블로그 ‘여울 사랑방’을 방문했다.  클릭과 동시에 청아한 목소리가 매력인 양희은의 <새노야>가 은구슬 쟁반 위로 굴러가듯 흐른다.  마우스를 살짝 내리니까 지난 2005년 고인이 된 영화배우 겸 탤런트 이은주양 얼굴과 마주친다.  가슴이 짜릿. 맑고 청조한 눈빛의 이양 사진 밑에는 <은주를 노래함>이란 제목의 시(詩) 한 편이 마음을 아리게 한다.

 

 


 

한결같아라

은주는 구슬

나는 너희를 구슬이라 불렀다

너희들을 구슬로 꿰어

보물로 삼으려 했거늘

은구슬은 저만치 굴러서 홀로

깜깜한 밤 반짝이는 별이 되어

미리내 여울 되어 흐르는구나

한결같아라

어느 날 밤하늘에 산산이 흩뿌려진

은빛 별무리 속에서

피아노 건반 위에서 하얗게 웃는 별 하나를 찾아

그 옛날처럼 다시 구슬로 꿴다

(여울 김준기)

 

우울증과 불면증에 시달리다가 자살, 가족과 팬들을 슬픔에 빠지게 했던 이은주양.  그는 1980년 군산에서 태어나 초중고를 다녔다.  김준기 시인은 이은주가 초등학교 4학년 때 담임. 제자들을 구슬로 표현한 글 마디마디에 안타까움이 배어나고, 사랑이 넘쳐난다.  여울은 시 한 편으로 모자라는지 애틋한 그리움이 묻어나는 추모의 글을 덧붙인다.

 

“초여름 깊은 밤, 무심히 흐르는 별 강 미리내를 봅니다.  문득 벌써 삼 년이나 지나버린 은주의 모습이 미리내 여울과 함께 흐르고 있어 깜짝 놀랍니다.  초등학교 4학년 제자인데 피아노 앞에 앉은 모습이 유난히 귀여운 아이였죠.  나는 그 아이가 피아니스트로 성공할 거라고 생각했어요.  그때 모습을 밤하늘 별 강 여울 속에서 보았습니다.”  지난 2월 22일은 이은주양 사망 8주기.  세월이 지났음에도 팬들의 추모 열기는 뜨거웠다 한다.  충무로의 별이었다가 밤하늘의 별이 되어 미리내 여울 되어 흐르는 이은주양.  그녀도 암과 투병 중인 스승 김준기 시인에게 하루빨리 쾌차하시길 바란다는 내용의 답장을 보냈을 것으로 사료된다.  소슬한 가을바람에 흔들리는 나뭇가지, 거리의 낙엽, 겨울의 하얀 눈송이를 통해서도 보냈을 거라는 추정도 무리는 아닐 듯.

 

스승과 제자의 사제지정(師弟之情), 볼수록 아름답고 흐뭇해

다음날(13일) 오후에는 군산시 개정동에 있는 여울 김준기 시인의 서재를 찾았다.  묵향이 은은하게 감도는 서재는 김 시인의 생활공간.  서재 한쪽을 차지한 책장에는 김 시인의 취미와 발자취가 느껴지는 다양한 장르의 도서, 목각, 서예작품, 상패 등이 진열되어 있다.  빽빽이 꽂힌 책 수만큼 많은 사람과 교류하고 소통해왔을 거라는 생각이 들기도.  4년 전 위암과 대장암 수술을 받고 투병 중이라 해서 내심 걱정했는데 괜한 우려였다.  인터뷰 중에도 고위 공직자들의 만성적인 부조리와 윗사람 눈치 보기 행정을 날카롭게 지적하고, 농담도 하면서 환한 웃음이 떠나지 않는 그에게 누가 환자라 하겠는가.  코끝을 스치는 은은한 녹차 향은 서재 분위기를 더욱 온화하게 해주었다.

 

 


 

여울 김준기의 제자 사랑은 이은주에서 그치지 않았다.  1963년 군산사범학교를 졸업하고 경상도 벽촌으로 첫 발령을 받아 그곳에서 가르쳤던 제자들.  그들이 하늘의 뜻을 헤아리는 지천명의 나이가 되어 네이버(naver)에 카페를 개설하고 자신들을 사랑으로 보듬어준 스승(김준기)이 방문해주기를 애타게 기다리며 메일을 보낸 것에서도 나타난다.  “선생님 저 ‘암주’입니다.  동물원을 한 번도 가보지 못한 저희에게 목이 긴 기린을 만들어주신 선생님.  텅 빈 운동장 한가운데 길게 목을 뻗고 있는 잔등 위로 선생님 몰래 올라타고 놀았음은 분명 사랑이었습니다.  아침 조회시간 왔다갔다 돌아보시는 선생님께 예쁘게 보이고 싶었음은 분명 사랑이었습니다.  시골 아이들에게 과학을 가르치시겠다고 실험실을 갖춘 것도 정말 멋져 보이는 우리 선생님 사랑이었습니다.  김득진 선생인 심부름으로 종이(?) 할머니 집에 선생님을 모시러 갔을 때 문을 연 순간 흐트러진 이불을 보고 개켜드리고 싶었음은 분명 사랑이었습니다.  명숙이에게 따뜻한 눈길을 보내실 때 말없이 가슴 아파했음은 분명 나의 첫사랑이었음을 고백합니다.  선생님 보고 싶습니다.  지금은 추억 속에 자알 살고 있습니다. 조만간 찾아뵙도록 하겠습니다.” (정암주 올림 01/15/17:56)

 

훈훈한 사제지정(師弟之情)이 묻어나는 감동적인 글로 3년 동안 담임을 맡았던 스승에게 초청 메일을 보낸 제자는 경북 경주시 감포읍 대본리에 자리한 대본초등학교 23회 졸업생 주진필, 정암주, 김형주 등.  선생은 많지만, 스승은 드물다는 요즘, 볼수록 흐뭇해지는 광경이다.  글에서 스승에 대한 제자의 존경과 사랑이 오롯이 묻어나고 있다.  김준기 선생이 재직하면서 처음으로 교가와 교기를 만들었고, 처음으로 수학여행을 다녀왔고, 처음으로 졸업앨범을 만들었고, 처음으로 외국인에게 연구수업을 공개했고, 처음으로 경주 월성 학생체육대회 육상 종합우승을 해서 학생들에게 ‘처음으로 선생님’이라는 별칭이 붙기도 했단다.  놀라움과 함께 “당신은 ‘금메달 선생님’이십니다!” 소리가 절로 나왔다.

 

김 시인은 “제가 1969년~1973년까지 재직했던 대본초등학교 운동장에 서면 바닷물이 하얗게 부서지는 ‘대왕암’과 동해의 장엄한 일출도 볼 수 있었는데, 2010년 졸업식(61회)을 끝으로 폐교되어 안타깝다”고 했다. 남 얘기 같지 않았다.  초등학교 시절 수업 시작을 알리는 종소리와 흰 체육복 차림의 선생님 호각 소리가 멀리서 들려오는 것처럼 느껴졌기 때문.  김준기 시인의 모교(개정초등학교)에 대한 애착과 후배 사랑도 지극하다.  군산 경포초등학교 교장재직 시절, ‘여울장학회’를 설립하고 총동문회를 통해 모교에 장학금 1천만 원을 기탁, 해마다 졸업생들에게 50여만 원을 지원하여 생활이 어려운 어린이들에게 사랑과 용기를 북돋아 주고 있어서다. 

 

암과 투병 중에도 글쓰기 계속, 남다른 우리말 사랑 실천 

김준기 시인은 발산초등학교 교장재직 시절인 2003년 봄 40년 교직 생활을 하는 동안 만난 17명의 선배 교장들과 추억어린 인연들을 수필형식으로 담은 교단 수기집 <혼돈의 시대에 그리워지는 교장의 그림자>(신아출판사)를 펴내 지역 교육계는 물론 일반 독자들 사이에 화젯거리가 되기도 했다.  그해 8월에는 중앙 문예지 <포스트 모던>에서 공모한 신인작품상 시 부분에 당선, ‘늦깎이 시인’으로 문단에 데뷔한다.  당시 여울이 출품한 <산에서 꽃에게> 등 4편의 시는 자연과 혼이 교류하는 서정적 모티브의 형상화를 통해 인간 의식의 휴머니즘을 상징적으로 표현하고 있다는 평가를 받았다. 

 

여울의 우리말 사랑은 초등학교 교장으로 재직 중에도 학교 홈페이지에 ‘생활국어 정보실’을 직접 운영할 정도로 남다르다. 교사들에게는 정확한 이해를, 자라는 아이들에게는 우리말을 제대로 가르치기 위해서였다고.  그의 노력은 퇴임 후인 2011년 2월 <말의 숲에서 길을 물으니>(신아출판사) 책을 발간하는 것으로 열매를 맺는다.  쌈지글 모음집인 <말의 숲에서 길을 물으니>는 저자가 암 진단 판정을 받고 두 달여 동안 방황하다가 마음을 다잡고 2009년 1월 초에 수술을 받고 병상에서 쓴 글을 엮은 책이어서 더욱 의미가 깊다.  여울은 “국적불명의 말들이 판치는 현실을 조금이나마 바로잡기 위해 발간했다”며 “우리말처럼 시의적절하게 사용하는 단어가 풍부한 말도 흔치 않다”고 덧붙인다.

 

 


 

여울 김준기 시인은 2006년 8월 30일 43년의 교직을 마감하는 정년 퇴임사(마지막 수업)에서 “봄날은 간다, 그래서 아름답다!”라고 했다. 그 말은 ‘우리네 인생이 아름다운 것은 봄이라는 계절이 있고, 그 봄날이 가기 때문이다. 봄날이 가지 않는다면 추억도 없다. 추억이 없다면 아름다운 사람도 없다’로 정리된다.  꽃샘추위인가.  인터뷰를 마치고 나오는데 볼을 스치는 바람이 제법 차가웠다.  그럼에도 김준기 시인은 대문 밖까지 배웅을 나왔다. 부디 건강하시라는 인사를 건네고 발길을 돌리는데, ‘당신은 요즘 보기 드문 금메달 선생님이었어요.’ 소리가 되뇌어졌다.  40년 전 제자가 보낸 메일의 “선생님 보고 싶습니다. 조만간 찾아뵙겠습니다.”는 구절과 함께…….

 

여울 김준기

포스트모던 신인상(시) 등단(2003)

한국문인협회, 한글학회회원

포스트모던, 월간문학, 문예운동, 문학공간, 시문학 등에서 활동

『한국명시선 100인』에 뽑힘(2006, 한국명시선발간위원회)

『한국시대사전』에 실림(2011, 을지출판사)

 

저서

「혼돈의 시대에 그리워지는 교장의 그림자」(교단수상록, 2003)

「여울 섶다리에서 부르는 노래」(e-편지글, 2006)

「우리말 사랑, 우리글 사랑」(칼럼, 2006) 

「말의 숲에서 길을 물으니」(칼럼, 2011)

 

김준기 시인은 다음 달 제목 <여울에 띄운 주홍글씨>를 발간할 예정이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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