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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전의 명수, 군산 야구거리 조성하자" 신영자 군산시의회 의원에게 듣는 군산 야구 이야기
글 : 조종안 /
2017.05.01 10:18:53 zoom out zoom zoom in facebook twitter kakaotalk kakaostory

"역전의 명수, 군산 야구거리 조성하자"

신영자 군산시의회 의원에게 듣는 군산 야구 이야기

 

 

 



 

 

 

군산에는 20세기 전설이 된 이름이 하나 있다. 불굴의 의지와 끈기로 1970년대 고교야구계에 돌풍을 일으켰던 군산상고다. 불모지였던 호남 야구의 주역으로 떠오르면서 역전의 명수 신화를 창조한 군산상고. 1972719일 오후 7시 부산고와의 결승 9회 말에서 대역전극을 펼쳤던 황금사자기 우승은 반세기 가까이 지난 지금도 한국 고교야구 역사에 전설처럼 전해진다.

 

군산상고의 전설은 경기 때마다 득점, 실점, 타이, 역전, 재역전 등 파란과 이변을 연출하며 탄생하였다. 승부 근성과 패기로 똘똘 뭉친 선수들이 보여주는 드라마틱한 역전극은 군산을 야구의 도시로 만들었다. 땀으로 흠뻑 적신 역전의 명수들이 전해주는 승전보는 힘든 삶의 탈출구이자 신선한 청량제 역할을 하였다. 군사정부의 편향적인 개발정책으로 실의에 빠진 시민들에게 위로와 감격, 희망을 안겨줬던 것.

 

군산상고 경기가 있는 날 군산의 중앙로, 영동, 평화동 등 평일에도 인파로 넘쳤던 중심 상가는 정적이 감돌았다. 택시 운행도 뜸했다. 시민의 눈과 귀가 TV와 라디오로 쏠렸기 때문이었다. 흑백 TV도 귀하던 시절이어서 전파사 입구와 다방 등은 관중으로 만원을 이뤘다. 결승전을 앞둔 날은 입장권과 고속버스 예약 등 응원 준비로 시내가 들썩였다.

 

우승이 확정되면 시내는 온통 축제 분위기. 시민의 함성은 아카시아가 만개한 월명산에 메아리쳤고, 교실에서 응원하던 재학생들은 운동장에 모여 만세를 물렀다. 야구 규정을 잘 모르는 양로원 노인들도 거리로 몰려나와 덩실덩실 춤을 추었다. 다방에서 응원하던 사람들은 술집으로 이동, 서울에서 내려온 응원단과 밤새도록 이야기꽃을 피웠다. 이튿날 거리에는 각양각색의 환영 현수막이 하늘을 뒤덮었다.

 

서울에서 내려온 선수들은 전북도청 앞 광장에서 열리는 도민 환영 대회에 참석해서 뜨거운 환영을 받았다. 환영 대회를 마친 선수들은 오픈카에 올라 전주를 출발하여 이리에 들렀다가 군산에 도착, 팔마광장, 산업도로, 째보선창, 도선장, 서초등학교를 돌아 중앙로, 경찰서, 군산역 로터리, 군산상고, 금광동(대학로)을 지나 환영식이 열리는 시청 앞 광장에 도착했다. 거리에는 꽃가루가 뿌려졌고, 시민들은 환호했으며 선수들은 감격했다.

 

이용일과 최관수 그리고 해태 KKK포 타선

 

군산상고에 야구부를 만든 주인공은 이용일 전 KBO 총재대행이다. 그는 경성고무() 상무이사 시절(1950년대 후반) 바닥을 헤매는 상급학교 진학률과 낙후된 군산경제를 야구로 살리겠다는 일념으로 초중고로 이어지는 피라미드 형식의 야구단을 구상한다. 그리고 1962년 초등학교 야구단 4(군산, 군산남, 중앙, 금광 등)을 만든다. 1964년 경성고무() 경영주가 된 그는 1968년 당시 2천만 원을 쾌척, 군산남중과 군산상고에 야구단을 창단하였다.

 

1970년 여름에는 인천 동산고와 국가대표를 거쳐 기업은행 에이스로 활약하다가 어깨 부상으로 은퇴한 최관수(1943~1998) 감독을 군산상고 세 번째 사령탑으로 어렵사리 영입한다. 최 감독은 솔선수범하는 지도자였다. 그는 언제나 선수들보다 먼저 운동장에 나왔고, 마음으로 가르쳤다. 야구 이론이 정립되지 않았던 시절임에도 끊임없이 연구하고 새로운 기술과 전술을 습득하기 위해 전력을 다했다. 한 베이스 더 가는 야구를 정착시킨 것도 그였다.

 

그 후 역전의 명수들은 해마다 전국 규모 대회에서 짜릿한 명승부를 보여주며 결승에 오르는 기염을 토한다. 최관수 감독 재임 기간(1970~1979) 우승 6회 준우승 5회의 찬란한 금자탑을 쌓은 선수들은 국내 명문 대학과 실업팀, 프로팀 등에 스카우트되어 중심타자로 활약한다. 대표적인 클린업트리오는 해태타이거즈 공포의 KKK포 타선(김봉연, 김준환, 김일권, 김성한 등). 그들은 군산의 위상을 드높였고 한국 프로야구 발전에도 이바지하였다.

 

불경기 돌파구 찾다가 '야구의 거리' 구상

 

군산시의회 제201회 임시회에서 군산상고 사거리-학교 정문 구간을 중심으로 역전의 명수 '군산 야구의 거리'를 조성하자고 제안한 신영자 시의원(민주당 비례대표)을 지난 17일 오전 시내 미즈커피에서 만났다. 신 의원에 따르면 군산시는 야구의 거리 조성을 긍정적으로 검토하고 있다고 한다. 아래는 신 의원과의 인터뷰를 정리한 것이다.

 

-언제부터 군산 야구에 관심을 두기 시작했나?

"나는 야구를 잘 몰랐다. 1971년 군산여상을 졸업하고 농협에 근무할 때 지금의 남편을 만나면서 눈을 뜨기 시작했다. 부창부수라고, 야구 '광팬'인 남편을 따라 동대문구장으로 응원하러 다녔고, 프로야구 출범 후에는 광주, 전주, 대전 등지로 원정응원도 다녔다. 그렇게 응원을 다니면서 야구 애호가가 됐다. 군산의 역사와 문화에 대해서도 그야말로 '문외한'이었는데, 시의회에 들어와 공부하기 시작했다. (웃음)"

 

-군산 야구의 거리를 구상하게 된 배경은?

"심각한 군산의 불경기 돌파구를 어디에서 찾을지 고민하다가 문득 '야구의 거리' 조성 아이디어가 떠올라 인천의 '류현진 야구 거리' 등 관련 자료를 찾아보기 시작했다. 그리고 역전의 명수 신화를 활용하면 관광객 유치에도 도움이 되겠기에 야구의 거리 조성을 제안했다. 군산시와 시민의 반응이 좋아 보람을 느낀다. 고무적인 점은 군산상고가 자체적으로 '야구 역사관' 설립을 추진하고 있고, 각종 영상물을 비롯해 선수들 기념품, 우승컵 등을 확보하고 있어 큰 비용을 들이지 않고도 가능하다는 것이다."

 

역전의 명수 관련 자료와 군산야구 상징 조형물 전시해야

 

-1972년 여름 황금사자기 결승전 경기를 기억하나?

"군산시 외곽인 조촌동에 살았던 나는 마을 이장네 집 대청에 놓인 흑백 TV를 통해 경기를 지켜봤다. 야구 룰(rule)도 잘 모르면서 손에 땀을 쥐고 시청했던 기억이 새롭다. 실책과 안타를 주고받으며 엎치락뒤치락하다가 군산상고 승리가 확정되는 순간 뒷산의 비둘기 울음소리가 시끄럽게 들릴 정도로 긴장감이 감돌던 동네는 온통 축제 분위기로 바뀌었다. 동네 사람들이 희색이 만연한 얼굴로 마당에서 춤추던 모습이 아련히 그려진다.

 

그날의 경기는 한 편의 드라마를 보는 것 같았다. 정말이지 다시 보기 어려운 짜릿한 명승부였다. 무명의 선수들이 불굴의 투혼으로 일궈낸 값진 승리는 '야구는 9회 말 투아웃부터'라는 신화를 창조하면서 군산상고에 '역전의 명수'라는 닉네임을 붙여줬다. 또한, 온 국민에게 '끝까지 포기하거나 좌절하지 않고 최선을 다하면 좋은 결과를 얻을 수 있다'는 신념을 불어 넣어주기에 충분했다."

 

-군산 야구 기념관 설치와 선수들의 휴먼스토리도 거론했는데?

"군산의 야구 역사를 정리한 책 <군산 야구 100년사>를 비롯해 인터넷에 올라온 자료들을 꼼꼼히 살펴봤는데 군산상고는 야구도 잘했지만, 눈물샘을 자극하는 휴먼스토리도 많았다. 경성고무 공장에 대형 화재가 났을 때 시내 초중고학생들이 성금 모금에 앞장섰다는 내용과 최관수 감독이 파킨슨병으로 투병 중일 때 온정의 손길이 이어졌고, 프로팀과 실업팀에서 활약하는 제자들이 보은경기를 열어 치료비를 전했다는 기사를 보고 가슴이 뭉클했다.

 

그 외에 선수들 간 동료애 등 가슴을 흐뭇하게 하는 숨은 이야기가 많았고, 한국 프로야구 역사에 한 획을 그은 이용일 전 KBO 총재대행을 비롯해 훌륭한 선수가 많이 배출된 것을 보면서 야구 기념관의 필요성을 절실하게 느꼈다. 그래서다. 역전의 명수 관련 자료들을 발굴하고 군산 야구를 상징하는 조형물을 제작해서 전시하는 것도 바람직하다고 생각한다."

 

고 최관수 감독 기념 빗돌이라도 세워야

 

-최관수 감독은 어떤 지도자였다고 생각하나?

"야구를 잘 모르는 내가 보기에도 최관수 감독은 진정한 지도자였던 같다. 인천 동산고 시절에는 야구 천재 소리를 들으면서 국가대표선수로 발탁됐고, 기업은행 선수 시절에는 에이스로 활약하면서 수많은 기록을 남겼다. 최관수 감독이 부임했을 때 군산 시민들이 기업은행 통장 만들기에 적극적으로 참여하였고, 그 결과 최 감독이 예금권유 실적 전국 1위 행원으로 선정되어 표장을 받았다는 대목은 정말 감동적이었다.

 

이용일 전 KBO 총재대행은 언론 인터뷰에서 '최관수 감독이 있었기에 군산상고가 야구 명문이 될 수 있었고, 역전의 명수가 됐다'고 회고했는데 나도 그렇게 생각한다. 그래서인데. 적당한 자리를 물색해서 최관수 감독 기념 빗돌을 세웠으면 한다. 나 역시 20년 넘는 기업은행 고객이자 군산 시민으로 군산지점에 동참을 공식적으로 제의하려 한다. 고인이 된 최관수 감독을 영원한 군산 사람으로 기억하기 위해서다."

 

-야구의 거리를 월명공원과 연계시키자고 제의했는데?

"월명공원은 군산상고 선수들 훈련장이었고, 역전의 명수 탄생 과정을 그린 영화 <! 지금부터야>(1977년 개봉) 촬영지였다. 정인엽 감독이 메가폰을 잡은 이 영화는 최관수 감독이 부임해서 역경을 이겨내고 황금사자기 대회에서 극적으로 우승하는 과정을 그렸다. 월명상고(군산상고) 감독으로 출연한 하명중은 제23회 아세아영화제에서 남우조연상을 받았다.

 

군산상고에서 해망동으로 이어지는 월명공원 산책로는 김성한 전 기아타이거즈 감독과도 인연이 깊다. 김 전 감독이 든든한 버팀목이었던 어머니를 일찍 여의고 방황하던 군산중 선수 시절 문제아들과 어울리던 곳이 바로 월명공원 뒷길이었다. 김 전 감독은 군산상고 1학년 때부터 주전으로 뛰면서 새벽 5시에 일어나 해망동 산동네 단칸방에서 할머니와 함께 사는 여동생에게 달려가 수돗물을 길어주고 왔는데, 그때 오간 길이 월명공원 산책로라고 한다."

 


 

 

거리의 안내문 오류 바로잡아야

 

인터뷰가 끝나고 밖으로 나왔다. 거리에는 여름을 재촉하는 비가 내리고 있었다. 근대 건축물이 즐비한 월명동, 신창동 거리를 함께 거닐었다. 군산의 야구 역사를 소개하는 안내판과 옛날 신문 등이 내걸린 담벼락 앞에서 발길을 멈췄다. 신 의원은 군산 최초 야구경기와 소년 야구대회, 옛날 사진 등에 묻은 빗물을 닦아주기도. 26회 황금사자기 결승전을 알리는 안내문에서 오류를 발견한 그는 기자에게 확인을 요청했다.

 

안내문을 보니 제26회 황금사자기 결승전 경기 날짜가 1972719일인데 20일로 표기되어 있었다. 당시 전라북도 도지사도 이춘성(19716~197310)이었는데 조철권(19807~198310)으로 기록하고 있었다. 신 의원은 이용일 선생, 최관수 선생 역시 착각하기 쉬운 호칭이라며 '경성고무 사장''감독'으로 바로잡아야 한다고 지적했다.

 

신 의원은 "군산은 100년이 넘는 역사를 간직한 야구의 도시"라며 "중앙로 중심의 원도심권과 군산상고가 위치한 문화동, 신풍동 지역을 묶어 야구의 거리를 조성하면 암울했던 70~80년대 경험이 없는 젊은 층에는 용기와 희망을, 40대 이상에게는 잊혀가는 아련한 추억들을 떠올리며 시간여행을 즐길 수 있는 문화공간으로 거듭날 것"이라고 덧붙였다.

 

덧붙임: 신영자 의원은 () 아미산업 대표이기도 하다. 신 의원은 지난 1월 장학금 1000만 원을 군산교육발전진흥재단에 맡겼다. 또한 2008년부터 올해까지 3800만 원의 장학금을 기탁하는 등 지역의 인재양성에 지원을 아끼지 않고 있다. 신 의원은 "군산시 교육지원사업에 상당한 변화와 발전을 피부로 느끼고 있다""시민으로서 자긍심을 가지고 지역사회에 나눔과 봉사실천을 위해 노력하는 기업인이 되겠다."고 전했다.

 

() 아미산업

주소: 군산시 나포면 철새로 374

지번: 군산시 나포면 서포리 604-31

연락처: 063-453-19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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