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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 이루었다! 그러나 마침표를 찍지 않는 사람
글 : 배지영 / okbjy@hanmail.net
2016.06.01 17:34:32 zoom out zoom zoom in facebook twitter kakaotalk kakaostory

다 이루었다! 그러나 마침표를 찍지 않는 사람

지방소도시 청춘남녀 인터뷰 42 군산 서해대 실용음악과 교수 이소은

 

한 달간 보신탕을 먹었어요. 삼겹살 기름도 먹고, 사슴피도 마셨어요. 대학병원에서 음성학 치료도 받았고요. 근데도 목소리가 안 나왔어요. 목포에 사는 용한 할아버지 한의사를 찾아갔죠. 저보고 기가 다 빠졌대요. 공진단 같은 환을 주면서 날마다 세 개씩 먹으래요. 일주일 먹고 나니까 마음이 좀 편해졌어요. 다시 원래대로 노래하는 데는 6개월 걸렸어요.”

 

당진 세한대학교 2학년, 소은씨는 성악을 전공하는 학생이었다. 대학생 수천 명이 지원한 광주시립교향악단과의 협연, 오디션에 합격했다. 소은씨는 날마다 희망에 차서 연습했다. 그런데 공연을 한 달 앞두고서 목소리가 나오지 않았다. 느닷없는 일이었다. 협연 기회는 날아갔다. 이제 뭐 하고 살까. 소은씨는 절벽 앞에 선 심정이었다.

 

초등학교 들어가기 전, 어린 소은은 외가에서 지냈다. 어머니는 아팠다. 곧 돌아가실 거라고들 했다. 큰 병원에서조차 병의 원인을 알아내지 못했다. 서울의 한 대학병원에서 디스토마 균이라고 밝혀냈다. 어머니가 즐겨먹은 게장 속에 있던 균이 어머니의 뇌 속까지 들어갔다고. 뇌수술을 한 어머니는 2년여 만에 집으로 돌아왔다.

 

그녀의 어머니는 젊은 시절에 노래를 하고 싶어 했다. 그런 기질과 끼를 딸에게 물려주었다. 초등학생 소은은 전주 MBC 어린이 합창단 활동을 했다. 좋아하니까 혼자서 버스를 타고 다녔다. 중학교 다닐 때는 방송 반에서 활동하면서 PD가 되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그러나 수학 공부가 너무 어려워서 재빠르게 포기했다.

 

중학교 2학년 때부터 성악을 했어요. 엄마 친구 딸을 따라서 예고 캠프에 갔거든요. 그 많은 애들 중에 한 지도교수님이 저보고 소질이 있대요. 꼭 노래를 하래요. 그래서 그 선생님한테 발성부터 배웠어요. 예체능은 돈이 많이 들어요. 저희 집은 그럴 형편이 아니었거든요. 엄마한테는 너무 미안했어요. 근데 너무 재밌으니까 못 그만두겠더라고요.”

 

체육교사인 아버지는 성악을 하는 중학생 딸에게 허황된 꿈이다라고 했다. 어머니는 식당을 해서 몰래 딸의 레슨비를 대주었다. 전주예고 성악과에 진학한 그녀, 상대적으로 집안 형편이 좋은 친구들 속에서 흔들렸다. 아버지한테 대들고 싶었다. 그러나 누나를 위해서, 학원 한 번 안 가고 공부하는 동생을 보며 마음을 다잡았다.

 

그때 성악 레슨비는 1시간에 약 10만 원. 전주대 음대에서는 한 달에 15만 원만 내고 배울 수 있는 프로그램을 진행했다. 그녀는 거기서 신정숙 교수를 만났다. 신 교수는 제자 소은에게 너처럼 끼 있게 케루비노의 아리아(피가로의 결혼 중 일부)’를 소화한 친구가 없었다고 칭찬했다. 그녀는 그 곡으로 세한대학교에서 콩쿠르 대상을 받았다.

 

세한대에서 4년 전액장학생에 유학까지 보내준다고 했어요. 집안 형편 때문에 무작정 세한대로 갔어요. 입학하고는 바로 유학 준비를 했고요. 화성학하고 독일어가 기본이거든요. 매일 오전 7시부터 9시까지 2시간씩 독일어를 배웠어요. 담당 교수님 남편이 독일분이셨거든요. 2학년 때, 목소리가 안 나와서 6개월간 고생하면서도 독일어 공부는 계속 했어요.”

 

대학 3학년 2학기, 소은씨는 오스트리아 빈으로 갔다. 슈베르트 음대 성악과의 교환학생으로. 학교 기숙사는 따로 없었다. 가장 싼(월세 40만 원) 숙소를 구해서 중국인 룸메이트와 지냈다. 김치를 담그고, 된장찌개를 끓여서 밥을 먹었다. 특별한 날에 먹는 건 1400원짜리 맥도널드 햄버거. 그때 소은씨의 소원은 햄버거를 한꺼번에 두 개 먹는 거였다.

 

한국인 친구들은 방학 때 귀국한다. 비행기 값을 감당 못 하는 소은씨는 그냥 남았다. 한 번은 이탈리아에서 성악 공부를 하던 막내이모가 비행기 표를 보내줬다. 소은씨는 열흘간 로마에서 지내면서 호사를 누렸다. 이모는 조카에게 삼시세끼를 모두 챙겨주었다. 다시 빈으로 돌아온 소은씨는 여전히 쪼들리며 살았다. 그래도 활기찼다.

 

저는 빈에서 자리 잡으려고 했어요. 오디션에 합격해서 빈 국립음대(호크슐레) 예비학교 학생 자격도 얻었거든요. 제 처지를 아는 국립음대 선생님이 무료로 레슨도 해주셨어요. 근데 엄마는 안 된대요. 교환학생까지만 지원할 거라면서 오라고 하셨어요. 저도 알죠. 1년 반 동안 다달이 100만 원씩 보내주시는 게, 엄마가 줄 수 있는 최대치였거든요.”

 

소은씨는 어머니를 설득하려고 한국에 왔다. 빈에 있는 외국인 친구들에게 작별인사도 하지 않은 채로. 어머니는 분명했다. 더 공부 하려거든 한국에서 하라며 딸을 붙잡았다. 소은씨는 만날 울었다. 포기하지 못 하니까 그치지 못 하던 눈물. 그런데 늘 외면했던 아버지가 학비를 내밀었다. 소은씨는 중앙대 음대 대학원과 교육대학원에 진학했다.

 

일주일에 이틀은 서울에서 공부하고, 닷새는 전주에서 지내는 생활. 소은씨는 현직 음악교사를 통해서 중고등학교 음악 이론을 8주 만에 마칠 수 있는 학습법을 배웠다. 그녀는 획기적인 공부 방법에 자신의 스타일을 덧붙였다. 내신 성적에 포함되지만, 의외로 어려운 음악 시험 때문에 고민하는 학생들. 보내오는 반응은 폭발적이었다.

 

·고등학생들한테 음악 과외를 많이 했어요. 전라북도에서는 처음으로 공연한 뮤지컬 <사운드 오브 뮤직>에서 마리아역할도 했고요. 예중 강사도 하고, 성악 레슨도 따로 했어요. 2008년에는 세한대에 뮤지컬학과가 생기면서 시간강사로 갔어요. 그러다가 결혼하고 안정 되면서 학교 일에 더 매진했어요. 2012년에는 최연소로 세한대 전임교수가 됐어요.”

 

가르치는 일의 재미를 알아갈수록, 소은씨는 엄마가 되고 싶었다. 자연유산 두 번과 자궁외임신 한 번, 그래도 희망을 잃지 않은 소은씨 부부에게 기적처럼 찾아온 아기. 벅찬 감동은 오래 가지 않았다. 임신 9주차에 아기의 심장 박동이 희미해졌다. 담당의사가 살 가능성은 10% ”라고 한 아기를, 소은씨는 기필코 지켜냈다. 20131월에 엄마가 됐다.

 

세상에 태어나서 가장 간절하게 되고 싶었던 엄마. 그러나 소은씨에게는 뮤지컬학과 교수 일도 소중했다. 그녀는 전주에서 당진 세한대까지 출·퇴근을 했다. 왕복 4시간이 걸렸다. 소은씨는 두 가지 역할을 다 해내고 싶었다. 강의 끝나면 퇴근해서 직접 아기를 돌보았다. 소은씨의 온몸은 쑤시고 아팠다. 가끔은 고속도로를 달리면서 울었다.

“2014년 여름에 군산 서해대 이용수 총장님이 실용음악과를 만든다면서 전임교수로 와 달래요. 출퇴근 시간이 진짜 짧아지잖아요. 고민했죠. 세한대 교수님들도 가라고 도와주셨어요. 제 힘으로 실용음악과를 만들어가는 거잖아요. 전국에 있는 실용음악학원을 검색해서 안 가본 곳이 없어요. 구석구석 운전하고 다녔어요. 문전박대를 당한 적도 있고요.

 

아이돌 출신이면서, 활동하는 현직 가수면서, 강의할 분도 찾아다녔어요. 운 좋게도 ‘2AM’의 이창민씨를 소개 받았어요. ‘지방에 있는 대학인데 강의를 맡아주실 수 있느냐고 물었어요. 이름만 걸어놓는 교수 말고, 진짜로 학생들한테 수업을 해주셨으면 좋겠다고요. 그분은 꿈이 교육자였대요. 나중에는 학교도 설립하고 싶다면서 흔쾌히 서해대로 오시겠대요.”

 

지방대는 학생 모집이 거의 전부라는 말도 있다. 2015년 서해대 실용음악과 첫 입시 경쟁률은 71. 대성공이었다. 서울, 경기, 대구, 여수 등지에서 학생들이 왔다. 그녀는 가수 나비의 특강을 열어서 제자들이 직접 만나게 했다. 양희은씨 초청공연도 했다. ‘방탄소년단소속 기획사의 오디션을 서해대에서 열었다. 미국에서 군산까지 온 사람도 있었다.

소은씨는 강의 외에 일을 계속 만들었다. 홍대 근처에 있는, 가수들만 쓰는 롤링홀을 대관해서 학생들이 공연하게 했다. 그녀는 매주 목요일 새벽마다 서울에 갔다. “우리 과에는 훌륭한 애들이 너무 많아요라면서 기획사 사람들을 만났다. 신사역 근처에 꾸민 서해대 실용음악과 연습실, 기획사 관계자들을 초청해서는 학생들에게 오디션 기회를 줬다.

 

학교에서 제 별명이 잔다르크예요. 2016년도에 실용음악과 경쟁률은 81이었어요. 서울에 있는 실용음악학원들이 주목해야 할 대학을 뽑았는데 우리 학교가 3’ 였어요. 저는 아이들에게 보컬 말고, 다른 것도 권해요. 음향제작은 유명한 정진 교수님에게 배우게 하고, 작곡도 마스터키나 원영현 교수님이 강의해 주세요.”

 

올해 봄, 벚꽃이 흐드러지게 핀 군산 은파유원지. 소은씨와 학생들은 공연을 했다. 진행을 맡은 박세리 학생은 시민여러분, 서해대 잘 모르시지요? 5년 안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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