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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면서 하나라도 이뤄 본 사람은 비법을 얘기하지 않는다
글 : 이수(자유기고가) / jean4929@hanmail.net
2013.12.01 10:40:22 zoom out zoom zoom in facebook twitter kakaotalk kakaostory

 


 

“길라임씨, 언제부터 이렇게 예뻤나?”

 

드라마 <시크릿 가든>에서 김주원(현빈)은 길라임(하지원)에게 묻고 만다. 지켜보는 사람들은 알고 있었다. 그가 사랑에 빠진 순간, 그녀는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사람이 된 거다.  살아가는 일은 이토록 뜬금없고 바보 같은 질문에 부닥치는 것이기도 하다.  지난 1년 동안, 그에게 영어를 배운 나도 다짜고짜 물을 수밖에 없었다.

 

“박욱현 선생님, 언제부터 이렇게 영어를 잘했어요?”

 

1980년대 후반, 박욱현은 서울에서 대학을 다녔다.  고향인 군산에 내려와서 18방(18개월 방위)을 마치고는 다시 서울로 갔다.  그 때부터 본격적으로 영어 공부를 했다.  지금처럼 화려한 ‘스펙’이 없어도, 토익 점수만 가지고 취직이 되던 때였다.  그는 직장을 얻어서 중국 상하이로 건너갔다.  무역사무실을 총괄하는 일을 2년간 했다.

 

“영어는 생활로, 실전으로 배웠어요.  제가 그 당시에 받았던 팩스가 하루 300장, 답변을 쓰거든요.  제가 말을 못 알아듣거나 하면은, 모든 클레임이 들어와요.  서류 하나, 말 한 마디에 제 연봉의 몇 배가 깨지는 상황인 거예요.  ‘아, 괜찮아요. 실수지’ 이런 분위기가 아니었어요.”

 

24시간을 꼬박 일하는 때도 있었다. 무역은 회사의 처음과 끝이다. 재료를 수입해서 갖다 주고, 만든 물건을 다시 팔아 수금한다. 그 돈은 정확하게 회사에 갖다 놓아야 한다. 그 회사의 수준은, 들고 나는 약속을 얼마나 잘 지키느냐로 가름된다. 무역청년 박욱현은 날카롭게 살았다. 술을 많이 마셨고, 한국말이 되게 하고 싶었다. 오줌도 한국 쪽을 보며 쌌다.

 

그는 한국으로 돌아왔다. 서울과 군산을 오갔다. 자리 잡지 못하고 방황했다. 그 때, 학원은 박욱현의 운명이 되어 주었다. 그는 대성학원의 영어강사라는 타이틀을 얻었다. 처가에 결혼 승낙 받으러 가기 하루 전날이었다. 얼마간의 서울 생활 뒤에 박욱현은 군산으로 내려왔다. 그가 시작한 우유배달 일은 재밌었지만 생활은 어려웠다. 첫아기를 낳아 기를 때였다.

 

“저희 이모가 영광여고 선생님이었어요. 제가 대학에 다닐 때, 저 용돈 벌라고 과외를 시켜줬어요. ‘너한테 과외를 받은 애들이 굉장히 성적이 올랐다. 너는 가르치는데 소질이 있어. 학원을 해 봐라. 네가 학원을 한다고 하면, 돈을 꿔줄게’라고 했어요. 꿔준다는 말에 마지막 희망을 걸고, 시작한 거죠.”

 

 


 

그는 10년간 입시학원을 했다. 고등부 수업이 끝나면 자정이 넘었다. 주말에도 수업이 꽉꽉 들어차 있었다. 새벽에도 수업해야 하는 날이 생겼다. 빈 시간이 없었다. 학원 일은 갈수록 빡셌다. 그는 숨통을 틔우기 위해 술을 마셨다. 바뀌는 건 없었다. 사람다운 삶을 살아보고 싶다는 갈증만 심해졌다.

 

밤은 일할 때 아름답지 않다. 밤에 실컷 놀면서 희미하다 짙어지는 어둠의 결을 느낄 때나 좋은 거다. 밤이 깊을수록, 밥벌이는 더 고단하고, 더 고독하다. ‘우리의 밤은 당신의 낮보다 아름답다’라는 노래는 허세로만 들린다. “나만 이렇게 힘든 건 아닐 거야” 자기 최면도 안 통하는 때가 오고야 만다. 무언가를 얻겠다면, 버려야 할 것도 있다. 그게 결단이다. 

 

“삶의 형태를 바꾸고 싶었죠. 4년 전, 입시학원에서 외대어학원으로 바꾸면서 그게 가능해졌어요. 수업이 밤 9시에 끝나니까 사회생활이 조금은 가능해졌어요. 국정원 대선개입 촛불 집회도 나갈 수 있잖아요. 그래서 이것저것 많이 해요. 밴드 활동도 하고, 탁구도 치고, 성인영어반(군산시민연대를 통해서 하는 무료 강의)도 하고요. 저는 개인적으로 지금이 행복해요.”

 

평화로워 보이는 그의 곁에는 언제나 ‘그 친구’가 있다. 오랜 시간, ‘그 친구’와 같이 학원 일을 했다. 휴일에 동네 공원도 걷고, 복싱이나 탁구도 같이 다니고 있다. 딸 둘을 낳아 기르고, 집안 살림도 같이 꾸리며 일구어 왔다. 금요일 밤에 하는 밴드 연습 때만 각자 지낸다. 그는 아내 최선영 선생님을 ‘그 친구’라고 불렀다.

 

얼마 전, 그는 아내에게 배반당할 뻔 했다. 그는 한 달 뒤에 밴드 공연을 한다. 생애 첫 공연이다. ‘그 친구’는 당연하게 올 줄 알았다. 누구보다 더 열광하며 축하해줄 줄 알았다. 그러나 “당신은 공연 해. 나는 조용필 공연 보러 갈 테니까” 라고 했다. 그는 조용필과 자신의 밴드 공연 날짜가 달랐다는 게 반전이라고 기뻐하며 말했다. 

 

“그 친구도 나 없으면 너무 심심할 거예요”

 

‘그 친구 바보’인 그의 진심을 알겠다. 그러나 그는 빈 말도 곧잘 한다. 그의 마음과 맞지 않는 학원생이 있으면, “넌, 훌륭하다”, “넌 잘 될 거다”라고 말한다. “응, 그랬구나!” 얘기를 들어주며 친구가 되려고 한다. 그렇게 6개월이나 1년이 지나면, 아이들은 달라진다. 수업에 집중하고, 예습·복습도 해 온다. 그는 그게 아이들을 위한 최선이라고 믿는다.

 

“영어를 재밌게 하려면, 시험이 없어져야 해요. 영어소설을 읽으면서도, ‘점수가 나올까?’ 생각하죠. 재밌게 팝송을 부르면서도, ‘내가 제대로 영어 공부를 하는 걸까?’ 불안한 거예요. 시험이, 영어를 통해서 놀 수 있는 길을 다 막아놓은 거니까요. 매년 65만의 수능수험생이 종이 시험지로 영어능력을 평가받아요.

 

‘슈퍼스타K’ 에서는 면접관들이 200만 명의 노래 실력을 평가하거든요. 우리나라도 영어면접관들이 직접 학생들의 말하기, 쓰기, 듣기, 읽기 능력을 평가할 수 있어요. 며칠 걸리겠지만요. 언젠가는 시험지로 사람을 평가하지 않고, 사람의 실체로 평가하는 날이 올 거구요. 그렇게 바뀌어야 된다고 생각해요.”

 

몇 년 전, 그는 영작에 대한 특허도 신청했다. 출원 상태인데 ‘기계에 얹혀야’ 되는 앱 작업이 남아 있다. 군산에는 그가 제안한 방식대로 프로그램을 짜줄 사람이 없다. 서울을 오가야 하는 작업이 남은 셈이다. 내년까지가 시한인데 그는 조바심을 내지 않는다. 특허를 따는 것은 돈을 쉽게, 더 많이 벌겠다는 얘기다. 그러나 그는 미련이 없다.

 

 

 

 

“저는 군산을 떠나고 싶은 생각이 추호도 없어요. 군산에 다시 오는데 너무나 많은 비용이 들었어요. 다시는 안 나가요.”

 

그가 살아온 이야기의 무대는 다시 군산을 떠나 서울로, 상하이로 옮겨갈 모양이었다. 대한민국 임시정부가 있던 상하이. 일본 왕 생일을 축하 하는 천장절 행사 때 윤봉길 의사가 물통폭탄을 던진 홍커우 공원이 있던 상하이. 모국어에 목말랐던 청년 박욱현의 과거도 그 곳에 있다. 지금의 박욱현 원장과는 몹시 달랐을, 날이 선 그 때의 얼굴은 상상이 안 됐다.

 

“상하이에서 살 때 군산이 그리웠어요? 어디가 가장 생각나던가요?”

“군산은 월명공원이지요. 그 동신 교회 올라가다 보면…….”

“동신 교회가 어디예요?”

“명산동요. 동국사랑 원불교당 지나면 체육공원이 조그맣게 두 개가 있어요. 그 공원들 사잇길이요. 가을에 가장 아름다워요. 봄날에 은파도요. 그 물결이랑……, 저는 군산이 좋아요. 물 많고, 바람 많고요…….”

 

 


 

영어가 아닌, 월명공원은 나도 자신 있었다. 그런데 그가 말하는 명산동 뒤 ‘조그만 두 개의 체육공원 사잇길’은 모르겠다. 나도 좋아하는, 월명공원 한 귀퉁이에 있는 어떤 집 얘기를 했다. 11월 초·중순, 가장 예뻐 보일 때를 기다렸다가 찍은 사진을 보여줬다. 여태까지 그 집을 알아보는 사람은 없었다. 그는 단숨에 장소까지 짚어내며 “이 집 알아요”라고 했다.

 

고흐는 ‘위대한 성과는 함께 이루어지는 작은 일들의 연속으로 이룩된다’고 했다. 그도 비슷한 말을 했다. 세상에 몇 달 만에 되는 비법은 없다고. 살면서 무언가를 하나라도 이룬 사람은 그렇게 쉽게 얘기하지 않는 거라고. 그래서일까. 그에게 영어를 배우는 나는, 해가 바뀌는데 이룬 것이 없다. 이제야 겨우 ‘개소리’ 같은 영어가 사람이 주고받는 말로 들려온다.

 

외대어학원 군산캠퍼스

군산시 나운2동 105-1

(063)461-05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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