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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산적십자평생대학 최용희 학장
글 : 강해인 / godls468@naver.com
2024.05.31 11:18:45 zoom out zoom zoom in facebook twitter kakaotalk kakaostory

1995년부터 30년째 어르신 평생교육 요람

 

일 평생을 어렵고 힘든 사회적 약자들을 위해 살아가고 계신 군산적십자평생대학 최용희 학장. 

해가 길어지기 시작하고 날이 제법 더워지는 듯 해가 강하게 내리쬐는 어느 날 최 학장을 만나러 갔다. 시원한 포도 쥬스를 한 잔 마시며 요즘 근황을 물어보니 현 군산적십자평생대학 학장인 최 학장은 어르신들과 무엇을 할지 어떤 프로그램을 만들면 좋을지 생각하며 몹시 즐거운듯한 표정이다. 어디서부터 이야기를 해야 할 지 잠시 망설이던 최 학장은 지난 날을 회상하는 듯 하더니 평생대학을 만들게 된 동기부터 이야기해 주었다.

 

1995년 전라북도(현 전북특별자치도) 적십자 협의회 회장이였던 최용희 학장은 구 역전 앞 커다란 나무 밑에 어르신들이 앉아 무료하게 막연한 시간을 보내고 있는 모습을 보고 어르신들을 위한 지금의 군산적십자평생대학을 생각했다. 

소속감을 갖게 하기 위해 ’평생대학‘이라는 이름을 붙였으며 일주일에 한 번 강의를 하며 학기제를 두어 학생회도 있다.

처음 모집인원을 100명으로 잡았지만 약 120명의 어르신들이 모였고 7월 사설 유치원들이 많이 생겨 문을 닫아 비어있던 적십자 유아원 건물을 군산적십자평생대학 건물로 사용할 수 있었다. 그렇게 1995년 9월 20일 평생대학이 개교했다.

  

'버려진 것에 생명을 넣어주다' 동아리

 

최 학장이 직접 레크레이션 자격증을 취득하고 외부 강사도 초청하며 동아리 활동(약 18개)도 활발히 진행한다. 어버이날 행사 겸 최 학장의 강의가 있던 날 직접 찾아가 둘러본 평생대학은 놀라웠다. 많은 어르신들의 표정은 나이를 잊은 듯 해맑았으며 행복해 보였다. 강연을 하는 최 학장을 바라보는 어르신들의 눈빛이 초롱초롱 빛이 나는 듯 하다. 동아리 활동 작품들도 다양하다. 난타, 한지공예, 통기타, 그림 등 각자의 취향에 맞게 등록해 열심히들 하신다. 행사가 있던 이 날도 난타 공연을 하시는 어르신들의 모습이 젊은이들 못지 않다. 이렇게 사람 간의 연대, 관계 등 정신적 가치를 배우고 ’난 쓸모없는 늙은이‘, ’내가 왜 사는 지 모르겠다‘ 등 실의에 빠진 노인들은 이곳에서 활력을 얻어 간다.

 

대학이지만 졸업이 없는 시스템이며 개강식 및 수료식만 진행한다. 평생대학에 다니시는 어르신들은 “내가 죽으면 그게 졸업이지~”라며 우스갯소리를 하신다고 한다. 

대학을 1등으로 졸업하고 총장상도 받은 최 학장은 영어를 전공해 영어 선생님으로서 일반 학교에 취업할 예정이었지만 구두닦이, 신문팔이 등을 하는 어려운 아이들이 밤, 낮으로 다니는 고등국민학교에서 첫 교사 생활을 시작했다.

그 후 1977년 산업체에서 근무하는 사람들이 낮과 밤에 다니는 청구여자상업고등학교로 갔으며 그 학교가 사라진 후 간 곳은 장애인상담소, 성폭력상담소, 그리고 현재의 범죄피해자지원센터까지 모두 어렵고 힘든 사람을 돕는 일만 찾아다녔다. 

봉급도 적고 자녀가 넷인 최 학장은 “경제적으로 힘들지 않았던 건 아니지만 그 것이 본인의 생활을 좌우하지 않았다.”며 “학교 일정 중 다낭 여행을 떠났을 때 어르신들이 너무 즐거워 하셨다.”고 했다.

  

훌라 동아리와 함께

 

가족들과 가면 보폭도 다르고 속도도 다르고 취향도 다르고 여러 가지로 눈치도 많이 보시는데 어르신들끼리의 여행이니 모든 것이 맞춤 여행이었던 것이다. 

“어느 한 분은 ’내가 이번 여행이 인생의 마지막 여행이 될 것 같아서 꼭 가고 싶었는데 갈 수 있게 돼서 학장님께 너무 감사드린다.’고 말했고, 그 말씀 후 한 달도 되지 않아 돌아가셨어요.”

그렇게 최 학장과 마지막 인사를 하신 분들이 여럿 계신다. 이에 최 학장은 소풍 일정이 힘들었나 등 가족들이 찾아와 한소리 들을 것 같은 생각에 걱정을 많이 했다고 한다. 하지만 그 가족들은 모두 찾아와 마지막 가는 길까지 행복하게 해주셔서 감사하다며 고개 숙여 감사 인사를 하고 가신다.

“코로나 때 어르신들이 학교를 나오지 못하시고 집에만 계시다가 식사도 잘 못하셔서 돌아가신 분들이 많았어요.”라며 한분 한분 찾아 뵀지만 한계가 있었고 힘들고 마음 아팠던 때도 회상했다.

 

최 학장은 “1969년 처음 지어진 낡고 작은 건물, 2013년도 새로 지었지만 유아원이었던 곳이기에 좁은 건물이라 현재 늘어난 학생 수를 모두 수용하기 힘들다.”며 “문을 열고 목욕탕 의자를 놓고 앉아 강의를 들으신다.”고 말했다. 

이어 “꿈에 학교 강당 건물이 무너지는 꿈을 꾸었는데 다행이란 생각이 들었다.”며 “이렇게 무너져 내가 죽으면 건물은 새로 다시 짓겠구나 하는 생각이 먼저 들었다.”고 말했다. 

현재 (사)군산익산범죄피해자지원센터 사무처장을 역임하기도 하는데, 이곳에서 최 학장은 검찰과 경찰과 연계해 피해자들의 피해상담, 응급진료 안내, 보호시설 안내, 수사기관 및 법정동행, 형사절차정보요청 및 의료 경제적 인프라를 지원, 상담한다.

최 학장은 “아직 우리나라는 복지 수준이 높은 수준임에도 불구하고 행복지수는 최저 수준을 기록하고 있다.”며 “그만큼 개개인이 마음의 행복을 못 느낀다는 증거이기 때문에 내적 행복을 찾을 수 있는 방안을 끊임없이 강구하고 싶다.”고 했다.

  

어르신들과 자유여행

 

또한, 여성으로써 사회활동을 100% 전력하기엔 워킹맘으로써의 애로사항도 많았다. 그러나 바쁜 엄마를 이해해준 네 명의 자녀, 아내의 든든한 버팀목이 돼 준 남편, 일을 하며 만나게 된 소중한 인연들로 힘을 얻으며 여기까지 왔다.

죽더라도 조금이나마 누군가에게 도움이 되고 싶어 장기기증, 시신기증까지 모두 작성하고 일흔을 넘긴 나이에도 불구, 지역사회에서 사회적 약자들을 위해 다방면의 활동을 펼친 최용희 학장.

누구나 마음 속에 남을 돕고싶은 마음은 가지고 있다. 하지만 실천하고 실행하기는 어려운 법, 하지만 최 학장은 일말의 고민하는 법 없이 늘 거침없는 모습에 그저 감탄하게 된다.

“봉사이기에 인건비 자체가 없어 30년간 나의 자리를 노리는 사람이 없는거 같다.”고 웃으며 이야기한 최용희 학장의 모토로 삼는 ‘All happiness is in my mine(모든 행복은 내 마음속에 있다.)’와 좌우명인 ‘I’m always happy(난 항상 행복하다.)‘의 글귀에서 뿜어지는 긍정 에너지를 지역사회 많은 이들이 한가득 받을 수 있길 기대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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