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님께서 카인에게 물으셨다. ‘네 아우 아벨은 어디 있느냐?’ 그가 대답하였다. ‘모릅니다. 제가 아우를 지키는 사람입니까?’ (<성서> 창세기 4장9절)
해마다 새해 첫날을 가톨릭교회에선 ‘세계 평화의 날’로 기린다. 지난 12일 바티칸은 ‘2014년 평화의 메시지’를 공개했다. 교황 프란치스코가 내놓은 첫 ‘평화의 메시지’다. 9쪽 분량으로 17개의 각주까지 달려 있는 메시지에서, 교황이 <성서>의 가르침에 기대어 강조한 것은 다름 아닌 ‘우애’다. 구약의 첫 권은 ‘창세기’다. 천지만물을 창조한 신이 자신의 모습을 닮은 인간을 빚었다. 그 첫 인간의 후예가 카인과 아벨이다. 형 카인은 동생 아벨을 시기해, 들판으로 데려가 죽였다. 그때 신이 묻는다. ‘네 아우는 어디 있느냐’고. 창세기의 가르침은 오늘도 여전하다. 교황은 ‘평화의 메시지’에서 “당신의 형제자매는 대체 어디에 있느냐”고 물었다.
지난 3월13일 제266대 교황으로 선출된 이래, 교황 프란치스코는 부와 빈곤의 문제에 집중했고, 불평등한 경제체제를 비판했다. 공정함과 정의를 강조했고, 탐욕과 권력의 유혹을 경계했다. 어느 정치·경제학자보다 강력하게 자본주의와 물질 만능주의를 통렬히 비판했다. 11월27일 발표한 244쪽 분량의 ‘교황 권고문’은 그 백미다. “극소수의 소득이 기하급수적으로 늘고 있다. 이에 따라 절대다수와 간극이 갈수록 커지고 있다. 이런 불균형은, 시장과 금융투기의 완벽한 자율성을 강조한 이데올로기의 결과다. 이에 따라 독재체제가 만들어졌다. 눈에 보이지는 않지만, 일방적이고 무자비하게 자기식 법과 규칙을 부과하는 독재 말이다.” (한겨레 12.23일 인용)
“저는 다만 묻고 싶습니다. 안녕들 하시냐고요. 별 탈 없이 살고 계시냐고요. 남의 일이라 외면해도 문제없으신가, 혹시 ‘정치적 무관심’이란 자기합리화 뒤로 물러나 계신 건 아닌지 여쭐 뿐입니다.” 지난 10일 대학생 주현우(27)씨는 학교에 붙인 대자보에서 이렇게 물었다. 그리고 전국을 휩쓸고 온 대자보 열풍에 부산대학교 김석준 교수는 “가슴앓이를 하는 학생 여러분께”라는 대자보에, 대학생들이 오랫동안 침묵하는 것을 보고 심각한 취업난 등 자기문제에발목이 잡혀 이제는 대학생들이 더 이상 사회변화의 주체로서의 책임과 역할에 대하여 고민하지 않는 줄 알았는데, 얼마나 큰 가슴앓이를 하고 있는지를 알았다며, 모두가 더불어 안녕할 세상을 꿈꾸는 여러분이 있어 진정 안녕할 내일이 앞당겨 질 것이라고 믿는다는 내용의 회신을 하였다.
새 정부가 출범한지 1년이 지나고 있지만 아직도 여러 국가 기관의 각 종 선거개입 등과 관련한 문제에서 자유롭지 못하고 헌정사상 최초로 정당해산 심판 청구, 철도 민영화, 민주노총건물진압 등의 굵직한 현안을 슬기롭게 풀어가지 못하고 있으며, 다만 “원칙 없이 타협하면 미래가 없다”는 공허한 원칙만 강조하고 있다.
이런 와중에 2014년 6월 지방선거가 임박해 오고 있고 지방선거에 집중하는 많은 후보들은 오로지 나의 선거에만 관심을 갖고 사는 것은 아닌지? 어린 학생들도 “안녕”을 묻는데 그 많은 사람들은 어디에서 안녕들 하신지? 모를 일이다. 다시 교황의 메시지로 돌아 가보자, “카인과 아벨의 사연은 우리에게 ‘우애’의 의무를 일깨워줍니다. 또한 그 의무를 저버렸을 때 만나게 될 비극도 보여줍니다. 우리의 이기적 행동이 저 많은 전쟁과 숱한 불의의 뿌리라는 점을 기억해야 합니다.”
<성서> 신약의 첫 권, 마태오복음서 23장8절은 “너희는 모두 형제”라고 가르친다. 신 앞에서, 인류는 모두 형제자매라는 말이다. 교황은 “현재 인류가 겪고 있는 극심한 경제위기도 결국 신으로부터, 이웃으로부터 멀어져 탐욕스럽게 물질만 추구한 결과”라며 “평화의 근본도, 평화로 가는 유일한 길도 ‘우애’를 재발견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오늘 내 앞길만을 위해 아등바등 살고 있는 것도 힘든데 무슨 소리냐고 하는 사람도 있을지 모를 일이지만, 신 앞에 모두가 형제인 세상에 사랑과 평화와 상생의 길을 가르치고 있는 교황의 신년 메시지를 가슴깊이 새겨 볼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