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시』
어느 틈에 김선순
금이 간 사발에
먼저 고이는 것은
햇살이었다
깨진 창으로는
바람보다
꽃향기가 먼저 들었다
상처는
아직 아물지 않았는데
빛은
어느새
그 틈을 익히고 있었다
그 틈으로
하루가 머물고
한 사람이 기대고
이름 모를 꽃이 피었다
가을이 문 앞에 와 있습니다. 계절이 바뀌듯 우리의 마음에도 때때로 계절이 바뀝니다. 한동안 아프기만 했던 일이 어느 날 조금 다르게 보이고, 여전히 상처는 남아 있지만 그것을 바라보는 마음이 달라질 때가 있습니다. 저는 그것을 치유의 시작이라고 생각합니다.
우리는 금이 간 것을 보면 먼저 ‘상처’를 봅니다. 하지만 상처보다 그 틈으로 들어오는 햇살을 바라봅니다. 마음도 그렇습니다. 실패했을 때, 관계가 멀어졌을 때, 사랑하는 사람을 잃었을 때 우리는 상처에 오래 머뭅니다. “왜 나는 이럴까” 하며 자신을 탓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치유는 상처를 없애는 데서만 시작되지 않습니다.
상처가 있는 나를 그대로 바라보고, 그 틈으로 들어오는 작은 빛을 발견하는 것. 그것이 치유의 한 모습입니다. 시치료에서는 시 속의 이미지와 자신의 경험을 연결하며 마음을 바라봅니다. ‘금이 간 사발’이 내 모습처럼 느껴질 수도 있고, ‘깨진 창’이 내가 지나온 삶처럼 느껴질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금이 간 틈으로 하루가 머물고, 한 사람이 기대고, 이름 모를 꽃이 핍니다. 상처가 있었기에 더 깊어진 마음, 아파보았기에 누군가의 아픔을 알아보는 마음. 어쩌면 잘 돌보아진 상처는 타인의 마음을 품을 수 있는 공간이 되기도 합니다.
9월, 추석을 앞두고 우리는 그리운 사람들에게 안부를 묻습니다. “괜찮아. 아직 아파도 괜찮아. 그 틈으로 햇살이 들어오고 있으니까.” 상처가 다 아문 뒤에야 꽃이 피는 것은 아닙니다. 어쩌면 어느 틈에, 상처 난 그 자리에서 꽃은 이미 피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마음에게 묻습니다
Q 지금 내 마음에 난 ‘틈’ 하나는 무엇인가요?
Q 그 틈으로 무엇이 들어오기를 바라나요?
김선순 시인
군산대학교 국어국문학과 졸업
시치료·독서치료전문가
봄봄문학상담연구소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