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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득하고, 아련했던 추억의 소환 삼성서울병원에서의 ‘루시드로잉’ 작품 전시를 보고
글 : 채명룡 / ml7614@naver.com
2026.10.13 15:26:21 zoom out zoom zoom in facebook twitter kakaotalk kakaostory

뭔가 가슴 한쪽을 아련하게 하거나 아득했던 추억이 이런 모습이었을까.

지난 2월 강남 일원동의 삼성서울병원 회랑에서의 일이다.

일반 미술관이나 전문 화랑의 전람회가 아니라 바쁜 환자들과 가족들 너머로 보이는 ‘루시드로잉’의 작품 전시는 색다른 경험이었다.

작품들은 모두 어릴 때 바라보았던 우리 동네의 표정들이 대부분이었다.

마치 ‘어이, 오랜만이야~~~’ 하고 손을 내미는 듯했다.

가슴속에 남아 있던 내 삶 뒤안, 그 흔적을 다시 만난 느낌.

그때 보았던 전시 작품들의 잔상은 오래도록 내 기억 속에 머물렀다.


볼 사람은 보고, 귀가 있는 사람은 들으리라

 

필자는 오래전부터 이 병원에서 치료를 받았고, 그 이후 지금까지 정기 점검 등으로 인연을 이어오고 있었다.

병을 얻고 내면으로 갈무리하는 데 익숙해질 25년 세월이 지나가는 동안 6개월 주기로 그 당시의 병을 추적 관찰 중이다.

삼성서울병원 본관에서 암 병동까지 길게 이어진 통로(회랑)가 있다. 환자들이 끊임없이 오고 가는, 말하자면 나와 비슷한 시골 촌놈에겐 낯선 풍경이다.

그렇지 않아도 병원 곳곳에 미술 작품들을 걸어두어 까막눈과 같았던 나의 눈을 호사스럽게 만들어주기도 했던 터였다.

이 병원에 가면 복도, 화장실 등등 은근하면서도 눈길 가는 곳마다 삼성이 수장한 작품들을 전시해 놓아 감상 비슷한 기회가 제공되었다.

물론 보는 사람에 따라 다르겠지만 ‘볼 사람이 보고, 들을 귀가 있는 사람이 들을 것’이리라.


익숙했던 기억의 소환

 

그날, 병동을 건너가는 회랑에 예전 필자가 자랐던 구암동과 아동리 마을 한쪽에서 보았던 기억의 장소들이 발치를 들고 서 있었다.

정미소, 동네 어귀의 쌀가게, 복남이네 자전거 수리점, 신영동에 나가면 보였던 소아과병원 등등…… 마치 50년 전의 기억이 생생해질 그림들이다.

작품 설명에 판화라고 하기도 했으나 대부분 일상에서 사용하는 컬러펜으로 여러 번 겹쳐 선을 그어가면서 공간과 여백을 만들어내고 일상과 풍경, 그리고 추억들을 소환하고 있었다.

작가가 건물과 풍경, 그리고 이미지를 만들어내는 건 ‘추억 만들기’의 또 다른 방편이 아니었을까.

작품들을 보면서 사진처럼 정교하게 표현되고 있다는 데 놀라움을 금할 수 없었다. 거기에 상상력이라는 양념을 조금 친 느낌.

일상과 건물에 남아 있는 시간, 그것들이 겹쳐 지나온 세월, 그것들을 기억하는 사람들과의 영적 교류 등등…….

교감이란 여러 말이 필요치 않다.

작가 또한 이렇게 사람과 작품 사이의 관계 형성을 바랐던 게 아니었을까?


군산의 근대 이미지와 어우러지는 루시드로잉의 작품 세계

 

루시드로잉의 작품세계와 상당히 잘 맞는 도시가 바로 군산이라고 본다. 아련하고 아득한 추억의 장소가 너무나 많기 때문이다.

근대건축물로 남겨진 조선은행 군산지점(근대건축관), 옛 군산세관, 일본 제18은행 군산지점, 신흥동 일본식 가옥, 동국사, 해망동·월명동·신흥동의 일본식 주택과 상점(적산가옥), 장미동의 항만시설 등이 그렇다.

2026년 초에 보여준 삼성서울병원 전시에서도 어디선가 보았던 동네의 건물과 집을 소재로 하고 있었으며, 시간과 기억이 스며든 공간을 보여줬다.

군산은 일제강점기 쌀 수탈과 항구도시의 역사가 담긴 곳이다.

작가의 펜을 사용한 겹쳐 그리기로 일제강점기의 아픈 상처를 담아낼 수 있을까.

거기에 더해, 루시드로잉과 같은 작가의 추억을 소환하는 작품들을 군산에서 전시할 수는 없는 것일까.


군산의 아픈 상처, 루시드로잉으로 치유하자

 

루시드로잉의 작품을 바라보는 내내 군산은 아픈 상처가 많다는 걸, 드러내 놓아야 치유가 된다는 걸 생각했다.

사라지기 전에 간직해야 할 것들을 루시드로잉처럼 남길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기억을 소환하여 기록으로 남기는 것은 후회하지 않기 위한 과정이다.

오늘의 시점에서 기억하는 모든 것에 상상력을 입혀주는 일. 군산다움을 찾아가기 위해서 이제부터라도 도전해 보면 어떨까.

루시드로잉의 작품으로 군산이 새롭게 조명되고, 아련했던 추억을 소환하는 계기가 마련되었으면 좋겠다.

더불어 그 작가를 초대하거나, 전람회를 열어 줄 누군가가 나오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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