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활시위 끝에 실린 호국충절… - 군산 진남정, 최호 장군의 기상을 잇다. -
글 : 박세원 / hamp38@hanmail.net
2026.10.13 15:17:04 zoom out zoom zoom in facebook twitter kakaotalk kakaostory

넓은 들을 지나 발산 마을로 가는 길목, 배롱나무꽃이 양옆 가로수로 끝도 없이 전개되어 있다. 백일 핀다는 꽃이 초여름 붉은빛을 활짝 머금었다.

전라북도 군산시 개정면 발산리, 한적하면서도 기품이 넘치는 반월산 자락 아래에는 특별한 장소가 자리하고 있다. 조선 중기의 무신으로 나라를 구하기 위해 목숨을 바친 최호(崔湖, 1536~1597) 장군을 모신 사당 충의사(충청남도 수군절도사 최호 장군 유지)와 그 기운을 마주 보고 들어서 있는 국궁장 ‘진남정(鎭南亭)’이 바로 그 주인공이다.


 

단순한 스포츠 시설과 사적지의 경계를 넘어, 진남정과 최호 장군 사당의 인접성은 국궁(弓道)이라는 민족 고유의 무예가 지닌 본질을 가장 명확히 보여주는 문화적 상징 공간으로 거듭나고 있다.

충절 최호 장군은 선조 9년(1576년) 무과 중시에서 장원 급제한 실력파 무장으로, 선조의 피란길을 호위하고 함경남도 병마절도사로 활약한 명장이다. 1596년 이몽학의 난을 신속히 평정하여 청난공신에 올랐던 그는, 1597년 정유재란 당시 충청도 수군절도사로서 칠천량 해전에 출전했다.

원균 등과 함께 연합함대를 이끌고 왜군에 맞섰던 최호 장군은 집중포화 속에서도 끝까지 배 위를 지키며 장렬히 전사했다. 61세의 연로한 나이에도 불꽃 같은 투혼을 발휘했던 그의 영정과 위패는 현재 군산 개정면 충의사에 모셔져 있다. 충의사를 찾았을 때는 이른 아침 유난히 푸른 잔디가 배롱나무 붉은 꽃과 어우러져 사당을 감싸고 있었다.


최호 장군의 무풍(武風)이 숨 쉬는 곳, 활터 ‘진남정’ 최호 장군의 사당 옆에 터를 잡은 진남정은 남쪽의 오랑캐와 침략을 누르고 나라를 평안하게 한다는 의미의 이름처럼, 호국과 방어의 기상을 온전히 품고 있다.

예로부터 국궁은 단지 과녁을 맞히는 기술에 그치지 않고, 마음을 바로잡는 '정심정기(正心正己)'의 덕목을 상징해 왔다. 진남정에 서서 과녁을 향해 활시위를 당기는 사두(射頭)와 사객들은 자연스럽게 담장 하나를 사이에 둔 최호 장군의 충의를 마주하게 된다.

장군이 평생을 품었던 나라 사랑의 마음과 무인으로서의 결기는, 오늘날 진남정 궁도인들이 당기는 활시위 하나하나에 자연스럽게 녹아든다. 매일 아침 진남정에 울려 퍼지는 팽팽한 활시위 소리는 마치 400여 년 전 정유재란의 현장에서 나라를 지키려 외치던 장군의 절규이자 영혼의 울림처럼 다가온다. 역사와 스포츠가 어우러진 ‘호국 문화 교육의 장’ 지자체와 지역 문화 전문가들은 진남정과 최호 장군 사당의 연계성에 주목하고 있다. 단순히 활을 쏘는 동호회 적 공간을 넘어, 청소년과 시민들이 조선 무신의 호국 정신을 직접 체감하고 배우는 생생한 역사의 현장으로 가치가 높기 때문이다.

 

진남정을 찾았을 때는 마침 ‘안수근 회장님’이 맞아주었다. 앉자마자 옛 진남정의 이주 과정과 이곳에 자리를 잡게 되기까지 과정을 술술 풀어주었다. 활쏘기야말로 취미로 즐기기에 안성맞춤 운동이라고 덧붙인다. 10여 년 전 시작한 국궁은 삶의 활력소가 되고 운동을 하면서 건강도 챙기고 회원들과 돈독한 정을 나누는 장소라고 소개한다.

“활을 쏠 때 바람을 계산하고 호흡을 가다듬는 과정은 자신과의 싸움이자 마음을 비우고 고도의 집중력을 발휘하는 정신 운동입니다.”

안 회장은 지금의 진남정이 자리 잡게 된 역사적 기반과 과정을 설명하는데 남다른 애정을 드러냈다. 진남정의 위치는 개정면 발산리 최호 장군 유적지(전라북도 기념물 제32호)동편에 부지를 마련하고 전통 목조건축물을 축조한 뒤 남북축으로 사(射)거리 150m 이상 조성했다. 오늘의 진남정이 있기까지는 군산시와 최호 장군 후손들의 협조가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음을 강조했다.

다만, 아쉬운 점이 있다면 현재 진남정은 과녁이 3관인데, 최소 4관을 갖춰야 전국 규모의 대회를 치를 수 있다. 4관 이상의 과녁이 있음으로서, 대규모 참기 인원을 소화할 수 있고, 제한된 시간 내에 대회를 마쳐야 하기 때문이다. 군산시에서 유일한 국궁장(고창 4개소)의 규모가 도민체전과 전국 대회를 수용할 수 있기를 바라는 궁사들의 마음을 전한다.


사대에 선 ‘박규현 여자 궁사’가 활시위를 당기자, 잠시 침묵을 깨고 공기를 가르며 손에서 떠난 화살이 과녁에 꽂혔다. 그 모습이 어찌나 위풍당당하고 멋지게 비춰져 어떻게 해서 활 쏘는 운동을 시작하게 되었는지, 몇 마디 질문을 던졌다.

어느 날 문득 활터를 지나다 마주한 국궁장과 궁사들의 활 쏘는 장면을 보게 된 박 궁사. 그게 너무 멋있어서 바로 국궁장을 찾아왔다는 그녀는 국궁을 시작한 지 7년 정도 됐다고 한다. 운동의 매력으로는 단순히 어깨 힘으로 활을 당겨서 쏘는 것이 아니라며 소신을 덧붙였다.


“이게 그냥 팔 힘으로만 쭉 당겨서 쏠 수 있는 스포츠가 아니에요. 여자들에게 꼭 맞는 전신 운동이에요. 저기 과녁까지 145m거든요. 과녁에 화살을 맞히기 위해서는 전신에 힘이 다 들어가야 돼요. 그래서 정말 전신 운동이 돼요. 전신 근력운동으로는 이만한 운동이 없어요.”

“국궁이 한 번 접하면 매력이 아주 많아요. 정신 건강에도 너무 좋고 이제 저 같은 중년 여성들한테는 근력을 키울 수 있고, 저는 건강도 굉장히 좋아져 우울할 시간이 없죠.”

궁사들의 활쏘기에 대한 자부심과 국궁장에 대한 애착을 드러낼 때마다 군산 진남정에서도 전북도민 체전이나 전국 규모의 각종 대회가 치러지기를 기대해 본다.

365일 궁터에 아침 운동으로 시작하여 퇴근 후 저녁 9시까지 와서 자유롭게 운동할 수 있게 개방되어 있는 곳 진남정. 과녁을 향한 궁사들의 뒷모습에서 늠름한 기개와 절제된 내면의 당당함이 느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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