옥구읍 상평리에 소재한 옥구향교, 최근 이곳을 찾는 관광객의 발길이 늘고 있다.
전국 제일의 배롱나무 명승지답게 경내에 만개한 배롱꽃은 향교의 고색 창연함과 멋스럽게 어우러져 이를 주제로 한 디카시(詩)공모전이 기획되어 있는 것도 관광객을 불러들이는 요인으로 읽힌다.
필자가 향교를 찾았던 날, 군 장교 출신으로서 문화해설사이자 향교의 장의(掌議/성균관 유생들의 자치기구인 재회(齋會)의 임원)로 활동 중인 조시탁 씨가 마침 일일 자원봉사자로 나와 있었다.
그로부터 향교와 관련된 설명을 들을 수 있었다.
옥구향교는 공자를 위시한 여러 성현에게 제를 올리고 지방민의 교육을 위해 국가가 세운 조선시대의 교육기관으로 오늘날의 공립학교라 할 수 있다.
조선 태종 3년인 1403년에 처음 세워진 후 인조 24년인 1646년 현재의 위치로 이전되었으며, 건물 배치는 앞쪽에 명륜당(明倫堂), 뒤쪽에 대성전(大成典)을 비롯하여 옥산서원, 문창서원, 단군성묘, 현충사, 세종대왕 숭모비, 자천대, 외삼문과 내삼문, 선정비, 전사재, 동재, 교직사 등의 건물들이 조성되어 있다.
옥산서원(玉山書院)
군산시 향토문화유산 제3호로서 1929년 지역 유림들이 국권을 잃은 상황에서도 충·효·예를 숭상하고 장려하기 위해 건립했으며 신라시대의 성현 문창후 최치원을 비롯하여 옥구지역의 선현을 모시고 있다.
문창서원(文昌書院)
최치원의 시호인 문창을 따 만들어진 정면 3칸 측면 3칸의 맞배지붕 양식 건물이다. 최치원이 옥구현에서 관리로 근무한 적이 있다는 구전이 전한다.
단군성묘(檀君聖廟)
1976년 지역의 유림들이 뜻을 모아 홍익인간의 이념을 펼친 단군성조를 모신 사당이다.
이후 여러 차례의 개·보수 과정을 거쳤으며 1998년 전면 개축되어 현재에 이르고 있다. 음력 3월15일 기신일은 어천대제, 10월3일 개천철엔 단군성묘 개천대제를 봉행한다.
대성전(大成殿)
전라북도 문화재 제 96호인 대성전은 정면 3칸, 측면 3칸 건물로 석축 기단 위에 자연석 주초를 놓고 민흘림 원기둥을 세운 후 이익공 형식으로 공포를 짜고 겹처마 맞배지붕을 올렸다. 내부에는 공자를 비롯한 그 제자와 설총, 안향 등 성현 18명의 위패를 모시고 있으며 향교의 대표인 전교(典校)와 수석장의 등 인근 유림들이 모여 분향제를 올린다.
명륜당(明倫堂)
외삼문을 들어서면 정면 5칸, 측면 2칸의 팔작지붕으로 된 명륜당이 서 있다. 향교의 두 가지 기능인 교육과 제사 중에 교육의 기능을 담당하는 명륜당은 공자의 정신이 윤리를 밝힌다는 의미를 가졌고, 현판의 글씨는 주자학의 창시자인 주희 선생의 필체를 모사하였다.
현충사(顯忠祠)
문창후 최치원, 이우당 조태채, 한포재 이건명, 면암 최익현, 돈헌 임병찬 등 5명을 모시고 있는 정면 1칸의 맞배지붕 형식의 건물이다.
세종대왕 숭모비(世宗大王 崇慕碑)
훈민정음을 창제하고 효행, 농사, 과학기술, 음악 등 263권에 달하는 서적을 편찬하는 등 민족문화를 창달 발전시킨 세종대왕을 기리기 위해 1973년 8월에 비각을 건립하였다.
자천대(紫泉臺)
전라북도 문화재 116호인 자천대는 군산의 유일한 2층 누각 정자로서 정면 3칸, 측면 1칸의 팔작지붕 형태를 띤 조선 후기 누각 양식을 확인할 수 있는 건물이다. 자천대는 본래 옥구현 서쪽 하제 포구 인근 바위산에 세워져 있었으나 일제강점기인 1934년 비행장 확장 공사로 존폐 위기에 처했는데 사라질 위기에 처한 자천대의 2층 누정을 당시 유림들과 옥구군 최학수 군수가 나서서 일본군의 군장비를 동원, 옥구향교로 이전하였다. 자천대는 ‘소년 시절의 최치원이 신라의 무관으로 내초도에 부임한 부친을 따라와 같이 살았는데 이 정자에서 글 읽는 소리가 당나라까지 들려 사신이 건너와 그를 데리고 갔다’는 전설이 전해지고 있다.

외삼문(外三門)과 내삼문(內三門)
향교의 입구에 해당하는 외삼문과 대성전의 출입구인 내삼문은 중앙의 큰 문과 양 옆 두 개의 작은 문으로 이루어져 있어 삼문으로 부른다. 중앙의 문은 어문(御門), 혹은 신문(神門)이라 하여 제례가 있을 때만 열 수 있고 신과 왕만이 이용할 수 있는 문이기에 평민의 이용을 금한다. 따라서 일반인은 양 옆의 문을 이용해야 하며 삼문에 들어갈 때는 동쪽(오른쪽)문, 나올 때는 서쪽(왼쪽)문을 이용하는데 이러한 이유는 해가 뜨는 동쪽을 남성과 동일하게 우선시했던 조상들의 관념에 의한 것으로 보인다.
선정비(善政碑)
향교 입구에 줄지어 늘어선 23기의 비석들은 옥구현에 부임하여 근무를 마치고 돌아가는 수령들의 선정을 기념하여 세운 비석들이 대부분이다. 비석 머리에는 용과 구름, 태양, 당초문, 귀면상, 학 등 조상들이 신성시했던 문양과 잡귀의 근접을 막는 문양이 양각되어 있다.
전사재(典祀齋)
전사는 조선말 장례원에 딸리어 제사의 일을 맡아보던 칙임관, 또는 주임관 벼슬을 일컬으며 전사재는 향교나 서원에서 석전대제나 석채제를 주관하는 전사관이 제례의 일을 관리하고 제관들과 협의하는 곳으로 제관복이나 제기 등을 보관 관리한다.
동재(東齋)
조선시대 교육기관에 설치한 기숙사로 강당을 중심으로 동쪽과 서쪽에 마주 보는 건물을 짓고 각각 동재, 서재로 불렀는데 동재는 주로 양반 자제가, 서재는 평민 자제가 기숙했다.
교직사(校直舍)
교직사, 또는 고직사로 불리는 향교의 관리인이 거처하는 곳으로 제사의 물품을 준비하고 강학 활동을 지원하는 일을 하는 곳이다. 향교에 따라서는 교직사를 단순한 관리사로만 이용하기보다 충·효·예절교실 운영 등 지역민 교육의 장으로 폭넓게 활용하기도 한다.

약 60여명의 유림이 등록된 옥구향교는 초등 교장 퇴직 후 시인으로 활동 중인 김옥중 선생이 전교(典校/향교의 대표)를 맡고 있으며, 전임 전교인 노장용 선생이 논어 강론과 한시 독해를 진행하고 있다.
또한 유림회(儒道會) 공명규 회장을 비롯하여 조시탁 장의까지 모두가 열성적으로 향교 운영에 본분을 다하고 있는 가운데 약 20~30여명의 회원이 참석하는 매월 초하루, 보름(삭·망) 분향제에는 논어 강론과 한시 독해 시간을 가짐으로써 회원들의 호응이 큰 것으로 알려진다.
하지만 향교 측으로부터 운영에 아쉬워하는 부분도 들을 수 있었다.
600여 년의 역사를 지닌 교육적 건물로서 매일 70~80명 이상, 특히 7월 중순 이후 배롱나무꽃이 피기 시작하여 약 100일 동안의 절정 기간에는 하루 백여 명 이상이 찾는 등 관광객의 발길이 꾸준히 늘고 있는 공간임에도 문화해설사 배치가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는 것이다.
그 이유를 정확히 알 수는 없지만 대부분의 지방에서 향교에 문화해설사를 두고 있는 반면 군산에만 배치가 이루어지지 않는 것은 지역의 향토문화유산을 소홀히 여기는 당국의 무관심 때문이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든다.
옥구향교
군산시 옥구읍 광월길 33-50
T. 063)464-91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