잔잔하게 밀려오는 푸른 바다처럼, 독자들의 마음에 따뜻한 봄날을 선사한 김정희 작가가 있다. 군산에서 나고 자라며 지역의 정서와 사람들의 이야기를 온전히 품어온 김정희 작가의 네 번째 에세이집 《거기, 봄날》을 세상에 선보인다.
작가의 글은 흔히 ‘잔잔하고 푸른 바다’에 비유된다. 화려하게 감정을 과장하거나 과한 수사로 포장하기보다는, 조용히 밀려왔다 쓸려가는 군산 앞바다의 파도처럼 담담하고 정갈하게 문장을 쌓아 올린다. 그의 글을 따라가다 보면 마음속 소란함이 씻겨 내려가고, 마치 고요한 해변을 홀로 거니는 듯한 평온함과 사색의 시간을 경험하게 된다.
이번 신작 《거기, 봄날》은 그녀가 걸어온 삶의 여정과 스쳐 지나간 소소한 순간들, 그리고 군산이라는 공간이 건네는 깊은 정서를 온전히 담아냈다. 자극적인 이야기가 넘쳐나는 시대 속에서 작가가 건네는 담백한 문장들은 겉으로 드러나는 거대한 함성보다 내면의 묵직한 울림에 집중하게 만든다.
제목에서 느껴지듯 이번 책은 누구나 마음 한구석에 간직하고 있는, 혹은 언젠가 다다르고 싶은 ‘봄날’의 기억과 희망을 다정하게 어루만진다. 세월의 결이 깊어질수록 더욱 푸르고 짙어지는 그의 시선은 바쁜 일상을 살아가는 독자들에게 잠시 숨을 고를 수 있는 기분 좋은 쉼표가 되어준다. 작가는 글 속에 그림을 담아 그려내는 재주를 가졌다. 작가의 그림은 전문 화가처럼 매끄럽지 않아 더욱 친근하게 느껴진다. 《거기, 봄날》 표지의 복숭아 그림을 보면 먹음직하고 보암직하다는 표현이 적절하게 맛깔나게 그렸음을 알 수 있다.
무더위가 한 풀 꺾인 날, 월명동 소재 책방 ‘봄날의 산책’(대표 박모니카)에서 출간 기념 ‘북 콘서트’가 진행되었다. 그녀의 잔잔하면서도 거침없는 글 이야기가 책방 안의 공기를 압도하며 궤적을 그린다. 작가는 글쓰기에 대해서 늘 같은 이야기를 하고 있다. 작가의 북토크 내용을 그대로 실었다.

글!
저는 대체로 조용한 아이였습니다. 학창 시절의 숙제나 살면 서의 숙제를 빼먹지 않으려고 안간힘을 썼던 사람이었습니다. 그것이 곧 성실함이라고 말할 수도 있는데, 이 성실함이 곧 저를 지금까지 이끌어 오지 않았는지 생각합니다.
저는 아주 오래전부터 글과 놀았습니다. 놀았다는 표현은 글 쓰는 일에 작정하고 덤비지 않았다는 말과 같습니다. 즐기는 사람 이기지 못한다고 하던데요, 생각해 보면 글 쓰는 일을 무척 즐거워했던 것 같습니다. 언제나 쓰고 있었거든요. 이 말은 멈추지 않고 쓰는 사람이라는 뜻입니다. 거의 10여 년 가까이 독서회를 했습니다. 책이 저를 쓰는 사람으로 이끌었다고 생각합니다. 읽는 일이 좋으니 쓸 수밖에 없었습니다. 조용한 아이가 내면의 소용돌이가 많은 사람으로 거듭난 것은 책과 글쓰기였습니다.
그림 에세이!
때로 제가 지겨울 때도 있었습니다. 세상 많은 즐거움 중에 하필 책 읽고 글 쓰는 일인가 싶었거든요. 그래서 뭔가 나를 바꿔 볼 기회를 찾던 중에 만난 게 그림이었습니다. 그러면 왜 하필 그림이었을까요?
어느 날, 도서관 수업을 마치고 집에 오는데, “뭔가 이게 다는 아니잖아?”라는 생각이 제 발목을 잡더군요. 차를 한쪽에 세워 놓고 문화센터에 전화를 걸었어요. “제가 사실 그림을 배우고 싶은데, 지금 가도 되나요?” 이렇게 그림이 시작되었습니다. 가슴 깊숙하게 묻어있던 작은 꿈 하나가 불현듯 노크한 것이었습니다. “모든 읽는 행위 쓰는 행위를 접고 이제 그림만 열심히 그려 봐야지?” 라고 다짐했는데 무슨 일인지 저는 새로운 고민을 하고 있더군요. “그림과 글을 어떻게 접목하지?” 라는 고민을요. 그래서 시도한 것이 그림 에세이였습니다.
그림요? 저 잘 그리지 못합니다. 다만, 제 글과 어울리는 그림을 그리고 있습니다. 그렇게 시작하여 4권의 그림 에세이를 갖게 된 것입니다.
결핍!
결핍이 많다고 여겼던 때가 있었는데요, 아마 학창 시절과 스무 살 무렵이었던 것 같아요. 정확히 말하자면 제 안에 인문학적 정서가 형성될 시기였던 것은 아닌가 싶어요. 그냥저냥 살아도 되는데 책을 읽으면서 자의식이 생겼고 그러다 보니 저를 자꾸 들여다보게 된 것이죠. 결핍은 결국 누군가 혹은 나와 다른 무엇과의 비교에서부터 싹이 트는 일인데, 대학교에 가지 못하게 된 순간부터 제 안에 결핍을 들여놓았습니다. 마흔이 넘어 기어이 대학을 나왔는데 사실 달라진 것은 크게 없었어요. 저는 저였으니까요.

온도!
삶에도 온도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번 책 작업을 하고 있던 오월 어느 날이었어요. 윤희 친구한테서 전화가 왔습니다. “정희야! 이팝나무꽃이 핀 걸 보니 네 생각이 나서 전화했어.”라고요. 이런저런 안부를 묻고 전화를 끊었는데, 뭔가 가슴에서 훈훈한 기운이 올라오더군요. 이게 무엇일지 곰곰 생각한 후에야 저는 깨달았습니다. 아, 나는 윤희처럼 산 지 참 오래구나, 하는 생각이었습니다. 비가 오면 비가 온다고, 눈이 오면 눈이 온다고, 꽃이 피면 꽃 보러 가자는 말을 참으로 아끼면서 살았구나 싶은 생각이 들었습니다. 누구에게라도 기척을 하며 사는 게 사람살이구나 싶었고요. 윤희를 위해, 어쩌면 저 자신을 위해 책 한 페이지를 남기게 되었습니다. 앞으로 그렇게 살고 싶어서죠. 이런 게 삶의 온도는 아닐까요. 저는 이 온도를 ‘다정한 온도’, ‘외갓집 가는 길의 온도’라고 부르고 싶습니다. 선생님들의 온도는 어떤 빛깔의 온도일까요.
작가의 글쓰기 사랑에 대한 집념이 끝없이 펼쳐졌다. 60여 명의 참가자들(좁아서 다 들어오지 못하고 돌아간 사람까지 80여 명)은 아무도 자리를 뜨지 않았고, 토크는 계속되었다. 작가는 성장 과정 중 농사일을 하는 아버지의 영농일지를 읽으면서 이미 작가의 길을 걷게 되었는지도 모른다. 마당가에 피어난 꽃 몇 송이를 꽂아 놓고 딸아이들을 환하게 웃게 한 아버지의 삶의 낭만이 작가의 내면에 스며들어 글을 쓰게 했다.
김정희 작가는 “글을 쓰는 과정은 내면의 잔물결을 가만히 들여다보고 삶의 조각들을 정리하는 시간 이었다”라며 “이 책을 읽는 이들이 저마다의 마음속에 숨겨둔 고요하고 따뜻한 ‘거기, 봄날’을 찾아가길 바란다”라고 출간 소회를 전했다.
군산의 풍경과 닮은 잔잔함으로 또 한 번 아늑한 위로를 건네는 김정희 작가. 네 번째 글의 여정인 《거기, 봄날》은 오랫동안 독자들의 마음 곁에 따뜻한 햇살처럼 머물 것으로 기대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