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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성형외과의 ‘레전드’ ‘군산의료원’에 초빙된 오석준 박사
글 : 채명룡 / ml7614@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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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성형외과의 레전드로 불리는 오석준 박사.

군산시 서수면 마룡리 상장곤마을이 고향인 그가 60여 년 만에 귀향하여 군산의료원에서 환자들을 진료하고 있다.

고희를 넘긴 시니어 의사이지만 레전드로 꼽히는 그였기에, 시골 병원인 군산의료원에 초빙되자 성형외과계의 화제가 되었다.

연세대를 나와 탄탄한 실력을 쌓았으며, 대한민국 성형외과의 토대를 만들어왔던 그의 귀향과 진료는 그 자체로 뉴스였다.

이야깃거리만이 아니라, 실제 그의 진료 혜택을 받을 수 있는 이 지역의 환자들에겐 낭보 중의 낭보다.

그는 대한민국 성형외과학계에서 수지 절단 환자들의 미세 접합술, 화상 환자 재건술의 선구자로 널리 알려져 있다.

군산의료원 화상 센터건립을 일생의 마지막 목표로 삼고 있는 오석준 박사.

수부(손가락) 재건과 머리·안면 기형, 화상으로 인한 피부 재건, 그리고 미용 수술 등 어려운 환자들에게 가뭄의 단비 같은 소식이다.

 

 

나의 닉네임은 ‘28

 

성형외과가 독립 진료 분야로 분리되기 직전, 청년 오석준은 일반외과와 성형외과 수련을 연이어 받았다.

1974년 일반외과 전문의 자격(전문의 번호-1162)을 취득한 뒤 다시 2년 동안 성형외과 수련을 했다.

남들은 3년이면 마치는 수련을 그는 5년 동안이나 걸린 셈이다.

성형외과가 독립되고 전문의 시험이 열린 첫해에 모두 21, 그리고 다음 해에 열린 2회 시험에 그를 포함한 7명이 응시해 모두 합격했다.

나이로 막내였던 그는 7명 중 꼴찌 번호를 받았다. 성형외과 전문의 자격증 28. 1976년의 일이다.

오늘 그는 50여 년 전 받았던 성형외과 전문의 ‘28의 명예를 걸고 고향 군산에서 나머지 인생을 봉사하려고 한다.

고되고 힘들다는 두 차례의 수련 생활을 마친 그는 정진에 정진을 거듭하면서 미세 수술, 화상 재건 치료 분야의 독보적인 위치에 오르게 된다.

고향 사람들은 모두 가족 같아요. 인구가 25만 명 정도인데, 한 다리만 건너면 누구네 식구 누구라느니등등 다 알 수 있잖아요? 편안하고 좋죠. 고향 분들이 누리지 못했던 성형외과 진료 혜택을 제가 앞장서서 제공하려고 합니다.”

 

외상 후유증 환자들 돕는 길 선택

 

의대 3학년 2학기 목요일 오후에는 진료 실습이 있었다.

학생 오석준은 외과 교수님 7~8분 중 성형외과 교수님을 따랐다. 1년 동안 실습을 하면서 성형외과에 눈을 뜨게 되었다.

교수님께서 예약된 환자의 쌍꺼풀 수술 한 번에 50~60만 원을 받으시더라고요. 당시 위 절제 수술 비용과 비슷했어요. ‘, 이 분야를 잘하면 환자도 보면서 돈도 벌 수 있겠구나생각했죠.”

그런 생각과 함께, 청년 오석준의 눈에 어렵고 힘든 성형외과 환자들이 들어왔다. 언청이 수술은 물론, 화상으로 인한 심각한 후유증을 겪는 환자들도 있었다.

일반외과의 경우 응급환자가 대부분이기에 유명을 달리하는 분들을 많이 봅니다. 책임과 의무도 있기에 표정 관리를 하지만, 내가 치료하던 환자가 눈을 감는 걸 보면서 무척 심한 갈등을 하게 됩니다. 의사로서의 숙명이지만, 힘든 과정이죠.”

일반외과 수련을 하면서 긴급한 환자들을 대하는 건 대부분 수련의 몫이었다.

의사로서 공부도 많이 했지만, 생사를 넘나드는 현장을 보며 갈등도 많았다.

성형외과 진료와 수술에 참여하고 공부하면서 진로에 대해 많이 고민했죠. 어렵고 힘든 환자들이었지만, 현장에서 세상을 달리하는 일은 거의 없었기에 마음이 기우는 건 어쩔 수 없더라고요.”

초를 다투는 긴급 환자들이 밀려드는 일반외과와는 달리, 성형외과의 진료와 수술은 예약에 의해 진행되었다.

환자가 밀리지는 않았지만 난이도는 매우 높았다.

성형 치료를 통해 삶의 활력을 찾아가는 환자들을 보며 수련의로서 나름의 보람을 느꼈다. 그는 성형외과 의사가 되기로 결심했다.

 


재건 성형 치료는 나의 길, 나의 인생

 

일반외과와 성형외과 전문의 자격을 모두 마친 오석준 박사.

그 또한 꽃길만 걸었던 것은 아니다.

군 생활을 마친 뒤 시골에서 서울로 복귀했지만, 뜻하는 대로 일이 풀리지 않았다.

이런저런 과정을 거치면서 국립의료원에 들어갔다.

뜻하는 대로 진로가 정해지지 않았어요. 내 실력이 부족한가... 고민했죠. 이때부터 내 실력을 키워야겠다고 독하게 마음먹었습니다.”

미세 수술을 연구하고 개발해 나갔다. 힘든 과정이었다.

처음 성형외과를 하겠다고 결심했던 때처럼, 돈을 버는 분야도 아니었다.

대부분 낮에는 외래 진료를 보고, 밤에 수술을 했습니다. 손가락 한 마디 접합 수술에 5~6시간, 손목 절단 같은 경우는 20시간 이상 걸리기도 했어요. 어려웠죠.”

성형외과 분야이긴 하지만 그는 미세 수술을 독립적인 진료 영역으로 개척해 나갔다.

이후 강동성심병원에서는 두경부암 분야를 개척했고, 미국 하버드대학교 연수를 통해 안면 기형 분야를 공부한 뒤, 자신만의 방식으로 국내 환자들에게 적용했다.

이런 노력은 국내 성형외과학계가 인정했다. 그는 안면기형, 골 성형술 등 대한민국 재건 치료 분야를 개척한 선구자로 기록되었다.

새로운 의학 분야를 개척해 나간다는 보람도 있었지만, 처음 성형외과를 지원하던 때와는 전혀 다른 방향으로 인생이 전개된 셈이니 아이러니한 일이죠.”

 

군산의료원 화상센터를 꿈꾸며

 

의사 인생의 마무리를 어떻게 할지 고민이 많던 그는, 어렵고 힘든 과정을 겪고 있는 군산의료원에 화상 전문 센터를 만드는 것을 구상했다.

그는 이미 한강성심병원 원장으로 6년간 재직하며, 병원 내 한림화상센터를 세계적인 화상 전문 센터로 성장시킨 바 있다.

당시 화상 치료 경험과 성과로 인해 그는 오늘날 화상 재건 성형 분야의 선구자로 평가받는다.

저는 약간 저돌적이라는 말을 들어요. 죽어가는 환자들에게 치료제나 드레싱제를 값싸게 사용해야 한다고 심평원을 설득했고, 결국 환자들의 비용 부담을 줄이는 데 성공했어요. 환자들이 최적의 치료를 받을 수 있도록 하려는 의도였죠.”

이처럼 화상 환자들을 무료 진료하고 지원해 온 업적으로, 그는 2004년 보건의 날 대한민국 정부로부터 국민훈장 모란장을 수훈했다.

화상 환자들에게 오석준 박사의 진료는 매우 높은 만족도를 제공한다.

그는 수술뿐만 아니라, 장기간에 걸친 치료를 통해 정상은 아니더라도 일상생활에 지장이 없도록 도왔다.

그 때문에 치료받은 환자들의 만족감과 향후 진료를 원하는 환자들의 기대감이 높아지고 있다.

저는 이식할 피부를 허벅지 같은 눈에 띄는 부위에서 떼지 않고, 머리 두피에서 떼는 방법을 적용하고 있어요. 이식된 피부도 잘 살아야 하지만, 이식한 자리에 흉터가 남으면 환자 만족도가 떨어지거든요. 그런 면에서 획기적인 방법이었죠.”

군산의료원에 화상센터가 들어선다면, 군산은 물론 충남 등 서해 중부권 환자들에게도 희소식이 될 것이다.

화상 전문병원이 전주의 A병원, 대전의 B병원뿐인데, 군산의료원이 공공적 기능을 보완해 줄 센터가 될 것으로 봅니다.”

언제까지가 될지는 모르지만, 힘 닿는 데까지 군산 출신 의사로서 봉사하려 한다는 그의 말에서 인정 많은 군산 사람의 향기를 느낄 수 있다.

 


 

고향, 영원한 마음의 안식

 

일생을 재건 성형 의학에 바쳐온 그였다.

화상을 입은 환자를 돕고, 욕창 후유증을 치료하며, 없는 귀를 만들어주는 일 등 타 의사들이 기피하는 분야를 도맡아 진료했다.

오늘날 환자들과 유쾌하게 마주하는 그의 모습엔, 갈라지고, 터지고, 절단되고, 사라진 신체 부위를 복원하고, 사용할 수 있도록 도왔던 수많은 시간이 녹아 있다.

앞만 보고 달려왔던 그가 고향 군산의 공공의료기관 군산의료원으로 초빙되었다.

그의 인생에서 고향이란 어떤 의미였을까.

오랜만에 고향에 와보니 다 친척 같고, 가족 같아요. 노인 환자들이 많이 오는데 몇 살이세요? 나하고 비슷하네하면서 편하게 해주거든요. 병원 오는 것 자체가 불편한 일인데, 집안 친척이 진료를 보는 것처럼 제가 편하게 해주니 좋아하시더라고요.”

진료실에 들어오는 환자들이 모두 형제 같고 친척 같아 마음이 가볍다고 했다. 좀 더 일찍 왔으면 더 좋았겠다는 아쉬움도 남는다.

전주나 익산까지 가지 않더라도 성형외과 질환들은 제가 다 치료할 수 있거든요. 여기서 간단한 건 치료하고, 심각한 건 이송해서 해결하는 시스템이 좋지 않겠어요?”

대한민국의 레전드가 진료를 보고 있는 군산의료원 성형외과. 그 잔잔한 파문은 이 지역민들이 고스란히 누리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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