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중 있는 작가들의 전시가 연중 열리고 있는 대형 갤러리카페 ‘공감선유’에 들어서면 서양화가 이정자(李靜子) 작가의 멋진 유화들을 만날 수 있다. 낯선 도시 군산에 우연한 일로 방문한 것이 인연이 되어 군산 정착을 결심했다는 8순의 그녀는 어릴 적 살던 서울의 분위기와 거리의 모습, 그리고 미국에서 20여년 거주했던 코드레인 시골 분위기를 떠올리게 하는 군산에 정감이 느껴졌다는데 특히 산과 바다, 호수에 둘러싸인 청결한 자연환경이며 입맛을 돋우는 음식에 매료된 것도 큰 이유였다.
지난 2022년 군산에 내려온 이 작가는 구입한 아파트의 내장 공사를 하는 동안 동국사 부근 게스트하우스에서 약 6개월간 임시 거주하다가 아파트 공사가 끝난 뒤 미국에 들어가 모든 가재도구를 다 정리하여 화물로 부치고 그해 크리스마스를 전후하여 낯선 도시 군산 주민으로서의 일상이 시작되었다.
이 작가가 군산 정착 후 처음으로 인연을 맺은 군산의 미술동아리는 ‘짬전’이었다. 2021년도 발족한 짬전은 군산대 미대 전공자 중심으로(대표 노승범 작가) 출발한 뒤 이후 비전공자들에까지 외연을 확장, 현재는 약 40여명이 활동하면서 정기적으로 전시회를 갖고 있는데 우연한 기회에 이 단체를 알게 되어 회원들과 친목을 다지고 있으며 올 10월 군산우체국 앞 리오갤러리에서의 전시도 예정되어 있다.
어릴 때부터 그림 그리는 일이 좋았다는 이 작가는 성인이 되어 서울대에 진학, 전공을 선택할 때에도 미술 이외에는 생각지 않았다. 스스로의 그림에 대해 딱히 어떤 화풍이라 말하기 어렵다는 그녀는 마티스를 비롯한 표현주의 작가들과 Willem de kooning, Robert Motherwell 등의 서정적 추상 작품을 좋아한다며 자신의 작업에 관한 소회를 이렇게 피력한다. “그림 그리는 친구들 사이에 쓰는 용어 중 ‘눈때를 묻힌다’는 표현이 있다. 붓과 나이프를 사용하여 작업하는 시간이 아닌, 캔버스 앞에 앉아 하염없이 그림을 들여다보며 명상하고 고민하고 반성의 시간도 갖는 시간을 의미하는 표현이다. 순수 우리말이어서 친근감도 있다. 어떤 때는 눈때 묻히는 시간이 길어 작업으로 이어지지 못하기도 한다. 다작(多作)을 하건 못하건 이 눈때 묻히는 시간은 꼭 필요하다는 생각을 한다.”
잠시 무언가를 회상하는 듯한 표정을 짓던 이 작가는 “이런저런 핑계로 일상생활에서 그림 작업을 멈출 때도 있었지만 그만 끝내겠다든가 언제까지만이란 생각은 하지 않았다. 둘째 아이를 낳고 두 달만에 대학원 진학을 했다. 대학 졸업 10년 만에 다시 학생이 된 것이다. 학위를 위해서가 아니고 다만 그림을 계속하기 위해서, 그러기 위해서는 어디에 소속해야만 할 것 같아서였다. 그 생각은 옳았던 것 같고 졸업 후엔 첫 번째 개인전도 열 수 있었다”고 심경을 술회하기도 한다.
이 작가는 그 후 오랜 외국 생활에서 틈틈이 그린 그림들이 모아졌다. 큰 그림들은 운반이 어려워 둘둘 말아 보관했는데 곰팡이가 생겨 캔버스 천이 부식된 탓에 안타깝게도 모두 폐기할 수밖에 없었고 도둑맞거나 잃어버린 작품도 있다. 61년도 입학 동기들이 모두 그림에 열심인 편이어서 동창전이 발족되었으며 그 전시회는 지난 25년 동안 한해도 빠짐 없이 계속, 근 65년 동안 동창들과의 교류도 진행형이다.
이 작가의 개인전이 열리고 있는 갤러리카페 공감선유는 옥구읍 수산리 현위치에 지난 2019년 5월 오픈, 7년 차를 맞고 있는데 평지와 야산이 결합된 자연 그대로의 지형을 활용, 약 10여 년에 걸쳐 조성한 대형 복합 문화공간이다. 자연과 도심의 매력이 동시에 느껴지도록 중앙에 위치한 산을 중심으로 3개 동의 미술관, 음악관, 라운지 등 현대적 콘크리트 건물 5개동 외에 옛 초가 한옥의 형태를 복원하는 등 현대와 예스러움이 앙상블을 이뤄 전북의 대표적 문화시설로서의 위상을 굳히고 있다.
따라서 공감선유에서는 오픈 7년에 이르는 현재까지 유수한 작가들의 다양한 전시가 연중 열리고 있으며 향후 2~3년 후까지 예약 문의가 쇄도할 정도로 명성을 얻고 있다. 이런 여건에서 이정자 작가의 전시가 곧바로 이루어진 것은 이례적으로 받아들여지는데 그만큼 이 작가의 뛰어난 작품성을 주목했기 때문이 아닌가 한다. 실제로 필자가 이 작가의 전시관을 찾았던 날도 많은 방문객들이 이 작가의 작품 앞에서 걸음을 멈추었으며 작품 가격을 물어보는 등 흥미로운 반응을 보이고 있었다.
학생 때 가르침을 주셨던 이미 고인이 되신 유경채, 문학진 교수님을 떠올릴 때가 많다는 이 작가는 장수 시대라고는 하지만 침대나 휠체어에 누워 살아야 하는 노후를 장수 인생이라 할 수는 없다며 몸을 움직여 무엇을 할 수 있는 나이까지가 정확한 수명이라는 생각을 한다. 그런 의미에서 나이들어감을 초조해하기 보다 부단한 그림 작업으로 바쁜 일상으로 시간을 잊고 지내는 것이 목표라 말하기도 한다.
짬전 회원으로서 평소 이 작가와 잦은 만남을 갖고 있는 환경미술 김덕신 작가는 “고령에 아무런 연고도 없는 타지에 정착한다는 게 누구라도 쉬운 일이 아닌데 실력과 인품을 겸비한 이 작가님께서 기꺼이 우리 군산을 택하여 주신 것에 감동을 받았다”며 언제 보아도 항상 조용하시고 겸손한 성품에 모범적 생활 모습은 우리 후배 미술인들에게 큰 본보기가 되고 있다“는 말로 이 작가에 대한 존경심을 드러낸다.
작가 프로필
-1943년생
-서울대학교 미술대학 회화과 졸
-성신사대 대학원 졸
-다수의 개인전 및 단체전 출품
-공감선유 개인전 2025.7.1.~9.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