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란 하늘 아래 청정 바닷길이 열린다. 파도가 하얀 거품 일으키며 부서진다. 어제의 시간과 다른 격랑의 세월은 담은 파도가 몰려온다. 석양에 물들어 가는 섬들이 옹기종기 모여 있다. 신시도, 무녀도 방축도, 명도, 관리도 등의 섬들이 신비하게도 둥그런 원을 그리며 선유도를 감싸 안고 있었다.
선유낙조(仙遊落照), 석양에 노을이 지는 서해 바다 모습은 장엄한 선유도의 풍광이다. 최치원의 설화가 있고, 이순신 장군이 12일간 머물렀다는 기록이 있는 곳, 고군산군도. 섬들이 옹기종기 무리지어 있는 풍경은 한 폭의 동양화 같았다. 어느 섬도 우뚝 솟아 있거나 혼자서 튕겨 나오지 않고 손을 잡고 어우러져 있었다.
송나라 사신 서긍(徐兢)이 본 고군산
서긍은 송나라 때 문신으로 사신단에 포함되어 고려를 방문하였다. 그는 사신단의 출발부터 귀국까지의 과정을 기행문 형식으로 기록하였는데 이 책이 「선화봉사고려도경」이다. 고려도경에 의하면 사신단은 관선 2척과 민간인의 통산선박 6척에 승선한 사절단으로 규모는 200여 명이었다. 이들은 5월 16일 명주를 출발하여 6월 6일 군산도(선유도)에 도착한 전경은 「선화봉사고려도경」 해도 편에 등장한다.
“6일 정해에 중국 사신이 선유도에 도착하니 6척의 배가 와서 맞아주었는데 배에는 무장병이 타고 징을 치고 호각을 불며 호위를 했다. 병사 100여 명이 깃발을 들고 해안에 정렬하였고 군선 6척이 수행하였으며, 김부식(「삼국사기」저자)이 사신을 영접했다. 또한 ”군산정(群山亭)이라는 정자는 두 봉우리를 의지하고 있는데 그 두 봉우리는 나란히 우뚝 서있어 절벽을 이루고 수백길이나 치솟아 있다“고 적어 망주봉 기슭에 ‘군산정’이라는 정자가 있었음을 알 수 있다.
이처럼 서긍이 바라본 선유도는 현재의 모습과는 전혀 다른 모습이다. 군산도가 고려시대 해상교통의 요충지가 될 수 있었던 이유는 선유도에는 거친 파도를 피하여 순풍을 기다릴 수 있는 천혜의 항구인 진또포구(현 선착장)가 있었기 때문이다.(김중규 저 「군산역사이야기」 에서 발췌)
이러한 역사적 사실을 기록으로만 남기지 않고 선유도 주민들이 자발적으로 나서서 재현한 행사가 있다. 바로 ‘송나라 사신처럼 그대, 선유도 오셨네' 라는 행사이며 2025. 6. 30. 석양녘에 2회 째 열렸다. 이는 문화재청 생생국가유산사업 일환으로 기획에서부터 홍보까지 선유도 행사를 전반적으로 이끈 선유도주민통합위원장이신 조춘호 회장과 지역주민대표 임동준씨가 있었다.
- ‘송나라 사신처럼 그대, 선유도 오셨네’ 행사를 준비하게 된 계기
선유도에서 태어나서 유년시절을 보낸 임동준 대표, 그가 다시 고향인 선유도로 돌아온 것은 2018년 연육교가 연결되면서이다. 그는 고향에 정착하면서 시골집 원형을 살린 농어촌 민박과 카페를 운영하고 있다. 주민대표 임동준은 ‘주민이 주인이다’라는 생각으로 ‘선유도주민통합위원회’를 발촉하여 조춘호 회장을 중심으로 사무국장 역할을 맡으며 본 행사를 주관하였다.
선유도에 연육교 개통 이후 한 해 300만 명 가까이 선유도를 방문하면서 크고 작은 혼란이 있었다. 주민들 또한 경험 해 보지 못한 일 앞에서 좌충우돌, 우왕좌왕했다. 임동준 사무국장은 우리의 역사문화를 알아가는 것부터 시작한다는 생각으로 특강과 세미나를 개최하였다. 이러한 기회를 통하여 자원의 소중함을 알고 해양환경에 대한 관심을 이끌어내기 위한 *비치코밍을 시작했다.
* 비치코밍은 해변가의 쓰레기를 수거하는 행동
이 행사는 902년 전 송나라 사신단을 선유도에서 영접했던 기록이 있는 「선화봉사고려도경」을 바탕으로 당시 외국인 사신단을 맞이하는 모습을 재현했다. 선유도 망주봉은 2018년 국가지정문화제로 지정이 되었다. 또한 선유도는 서해의 낙조 중 으뜸인 아름다운 석양과 경관을 지닌 망주봉을 중심으로 ‘선유팔경’을 보유하고 있다. 이러한 선유도만의 특색을 살린 홍보사업을 위해 주민들이 자발적으로 나섰다. 그 노력으로 국가유산청생생국가 유산사업에 ‘송나라 사신처럼 그대, 선유도 오셨네’가 선정될 수 있었다.
- 행사를 진행하면서
행사는 배에서 내려오는 사신단을 향해 선유도 주민 100여명이 깃발을 흔들며 환영했던 모습을 재연하면서 시작되었다. 노란색의 고려시대 의상 행렬은 푸른 바다에 투영되어 황금빛으로 빛났다. 군산정에서 다례연을 베풀었던 기록을 바탕으로 취타대와 주민 20여명으로 이루어진 깃발기수대가 선유도해수욕장까지 행진하였다. 무대에서는 ‘군산정 다례연’ 시연과 다양한 공연 등이 진행됐다. 어느새 고조되는 분위기에 취해 관람객 속에서 큰 박수를 보냈다.
송나라 사신단들이 방문했을 때 선유도에서 만든 송방이란 선박으로 사신단을 태워서 군산정에서 영접을 했던 기록이 있다. 이러한 역사적 사실을 재현하기 위하여 사료를 바탕으로 열띤 토론과 자문 활용을 통해 준비한 프로그램이다.
두 번째 행사인 고려와 함께하는 탁본과 고려역사탐방이다.
현지 발굴 기왓장과 청자파편을 이용하여 탁본을 통한 역사 체험과 오룡묘를 기점으로 번성했던 900여 년 전 역사를 국가유산 해설사가 직접 안내하는 프로그램이다.
세 번째 ‘선유도 별 헤는 밤’ 1박2일 프로그램이다.
망주봉 주변에 서식하는 멸종위기종인 흰발농게, 검은머리물때새, 살쾡이 탐방과 더불어 해양쓰레기 정화사업인 ‘비치코밍’을 통해 해양환경에 대한 관심을 갖도록 하였다.
네 번째 행사인 ‘선유도노을음악회’는 선유도해수욕장에서 음악회와 더불어 노을을 볼 수 있는 행사이다.
- 준비하면서 어려운 점이 있었다면
관계 기관과 주민, 많은 관광객들이 참여한 가운데 화려하고 아름다운 행사를 마칠 수 있었다. 행사 과정 중 어려운 점은 무엇보다 생업에 종사하는 주민들로 구성된 단체로서 늘 시간에 쫓기며 참여하는 등 진행에 부담감이 많았다. 하지만 부족한 점도 많았지만 자신의 주장보다는 협업이 잘 이루어졌고 많은 분들의 관심으로 성황리에 마칠 수 있어 뿌듯했다.
- 군산시에 바라는 점은
군산의 원래 지명은 군산도이고 군산도는 선유도의 본 지명이다. 이처럼 군산의 역사를 이해하려면 선유도의 역사를 이해하면 된다. 선유도가 관광지로서 풍경이 아름다운 섬으로만 기억되기 보다는 고려 역사 사료가 이만큼 풍부하게 남아있는 곳은 남한에서 이곳 선유도가 유일하다. 많은 역사적 고증과 망주봉 주변 발굴조사를 통해 땅 밑에 숨겨져 있는 이곳의 역사가 세상 밖으로 나오기를 바란다.
천의 얼굴을 가진 선유도를 찾는 관광객은 날로 늘어나는 추세이다. 선유도가 군산의 관광 중심 섬으로 나아가기 위하여 바라는 점이 있다면 선유도 곳곳이 방문하는 것이 아닌 그저 스쳐 지나가는 관광지인 것이 아쉽다. 선유도와 주변 섬의 역사적 사실이나 전설, 설화를 중심으로 스토리텔링을 바탕으로 자연을 해치지 않은 관광지 개발이 시급하다.
정성껏 우려 낸 차를 대접하는 ‘군산정 다례연’ 프로그램에 참여하였던 채영숙 작가는
“900년 전 고려여인이 되어 송나라 왕의 조칙을 가지고 선유도에 오신 사신들께 차를 대접하는 시연을 하며 임금님 앞에 있는 듯 마음가짐이 차분하게 무게를 갖게 되었다. 그 시대의 차나무가 우리 곁에 있었으니 우리만의 차 맛을 알리는 기회가 되었으면 한다”고 하였다.
역사란 후대에 남겨지는 것이며 옛 것을 소중하게 알고 새 것을 일구어 나가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얀 구름이 뭉게뭉게 피어오르고 멀리 망주봉에 남은 태양이 쏟아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