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세 미술의 마지막 시간 ‘고딕미술’에 대하여 알아보자. 고딕 미술은 12~16세기에 걸쳐 진행 되었다.
당시에는 이러한 건물을 고딕이라 부르지 않았다. 오프스 모데르눔, 즉 현대적 양식 또는 오프스 프랑키제놈, 즉 ‘프랑스 양식’이라고 불렀다고 한다.
이러한 배경아래 ‘고딕’이라는 말은 16세기 이탈리아인들에게서 유래 되었으며, 476년 서로마 제국을 멸망시킨 ‘고트족의 예술’이라 비꼬며 부른데서 기원한다.
대형화된 중세 교회의 큰 건축은 그 크기부터 신에 대한 간절함과 위엄을 나타냄으로 인간이 받는 느낌에 감동을 고조 시키려 했을 것이다.
고딕 건축의 뾰족한 첨탑과 스테인드글라스, 성서 관련 조각, 성경 필사본 모두 중세 미술의 전체에 걸쳐 나타나는 신과의 일체감에 대한 반영이다.
특히 고딕 건축의 교회 벽면은 유리로 만들어진 창살과 격자 문양이 강조됨으로 하늘(신)을 향해 다가가려는 방향성을 더 강화 하였다.
사르트르 대성당
이러한 고딕 양식의 대표적인 모델은 프랑스 사르트르에 있는 ‘사르트르 카톨릭 대성당’(1145년) 이다.
지면으로부터 37미터 높이에 이르는 사르트르는 로마네스크 양식으로 지어졌다.
이곳에는 성모 마리아가 예수를 낳을 당시 입고 있었다는 옷이 보관된 장소로도 명성이 있는 곳이다.
사르트르에도 시련이 있었는데 1194년에 화마로 인해 소실되어 12세기말~13세기 초에 걸쳐 다시 재건되었다.
이 성당은 신도석의 높이가 사르트르 성당에 버금가는 38미터이다.
이렇듯 건물이 높아지자 건축의 견고함을 위해 세계에서 최초로 ‘공중 부벽(Flying Buttress)’을 시공하게 된다.
‘공중부벽’이란 외벽을 지탱하는 반 아치형의 석조 구조물로서 이러한 과정을 통해 벽면은 공간의 여유를 갖게 되었고, 안정적으로 건물을 높이 올릴 수 있었다. 이것은 또한 고딕의 스테인드글라스를 도입하기에 최적의 조건을 제시하게 된다.
부벽으로 인하여 높은 창문을 내는 것이 가능해진 벽면은 ‘첨두아치(끝이 뾰족한 형태)’형태의 창문으로 외관이 장식 되며, 그에 따른 장미창과 조각 장식의 환상적인 매치는 건축 내부로 들어오는 빛과 만남으로 웅장함을 만들어내기에 이른다.
아미앵대성당
‘아미앵 대성당’은 고딕 건축의 진수를 자랑하는 또 다른 사례이다. 앞서 나타낸 고딕의 특징에 원형, 아케이드, 클로버잎 모양 등을 더한 기하학적 모양을 반복시켜 장식적 효과를 극대화 시킨 사례이다.
이렇듯 오랜 시간 사람의 기술을 통해 만들어진 고딕 미술품들은 자국민과 지역의 시민 긍지를 높이는 자부심의 상징이었다. 이러한 건축 내, 외부에 이르러 고풍의 미를 더하는 미술 분야는 조각, 스테인드글라스 그리고 타피스트리(텍스타일을 사용하여 만들어지는 벽걸이 형태의 직조 예술품)를 들 수 있다.
중세 말기는 앞서 언급한 중세 고딕 건축 미술의 특징들이 점점 쇠하고 있었다. 이탈리아인의 유연함 때문일까. 그간 잠들었던 자연스러운 인간미를 보여준 고대 이집트 미술이 그들의 세포 속에서 다시 재생된 것이다.
중세 말기 회화의 소재는 시대적 흐름을 이어가며 기독교적 세계관에서 벗어나지 않았다. 그러나 다소 딱딱하게 경직되며 정적이었던 초기 중세 회화가 아닌, 부드러우며 섬세한 감정 표현과 자연스러운 인물 묘사가 돋보이는 ‘성상화’가 재출현 했다.
회화에서 나타나는 각 인물들의 감정 표현과 서정적인 분위기는 중세의 무겁고 엄격함을 벗어나 인간미가 다시 회귀하는 미술사의 큰 변화였다. 이 변화의 흐름은 르네상스 미술의 마중물 역할을 하며 미술의 거장들을 이끌어내는 시대로 들어가게 된다.
다음 달 기고를 앞둔 르네상스 미술은 5부작을 앞두고 있다. 한걸음씩 발을 옮기며 ‘르네상스 미술’의 세계로 입문해 보려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