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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일장 돌며 김 파는 청년 스물네 살 김성수
글 : 배지영(시민기자) / okbjy@hanmail.net
2015.04.01 16:45:25 zoom out zoom zoom in facebook twitter kakaotalk kakaostory

버려지듯 해고당했는데 그게 오히려 잘 된 일

지방소도시 청춘남녀 인터뷰⑲ 오일장 돌며 김 파는 청년 스물네 살 김성수 

 

 

작년 2월에 성수씨는 회사에서 해고당했다. 태양광 만드는 회사의 하청업체였다. 직원은 120여 명, 성수씨는 팀원 8명과 함께 현장을 돌며 전기를 고쳤다. 그는 기술을 빨리 배우고 싶었다. 쉬는 날에도 나가서 일했다. 입사 6개월 차에 회사 사정이 어렵다는 말을 들었다. 가정을 가진 팀 동료들, 스물세 살 청년 성수씨만 떠밀려 나왔다. 혼자 버려진 것 같았다. 

 

그는 군산 회현중 다닐 때부터 빨리 취업하고 싶었다. 그래서 익산에 있는 전북기계공고로 진학했다. 기계 조립하고 깎는 것을 배웠다. 고3 가을에 경기도 안양으로 취업을 나갔다. 핸드폰 부품을 만드는 회사에서 하루 12시간씩 일했다. 월급은 140만 원, 힘들었지만 병역특례를 믿고 1년간 버텼다. 법이 바뀌면서 그 회사에 다녀도 군대는 가야 했다.  

 

성수씨는 강원도 양구 백두산 부대에서 ‘나가서 뭐 할까’를 많이 고민했다. ‘내 일을 하고 싶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부모님한테 손 벌릴 수 없어서 제대 한 달 만에 취직했다. 익산에 있는 버스 바퀴 휠 만드는 회사. 12시간씩 2교대 근무. 일하고 자는 것 말고는 여유가 없었다. 페인트칠을 하는 공장 공기는 탁했다. 그래서 옮겨간 회사가 전기 고치는 곳이었다.  

 

 

“이 일도 괜찮으니까 네가 한 번 배워봐라.”

 

오일장을 돌면서 구이 김을 파는 성수씨 아버지가 말했다. 그는 백수가 된 지 사흘 만에 아버지를 따라나섰다. 시장에서 일하는 것에 대한 거부감은 없었다. 그는 청소년 시절에도  방학이나 명절 대목에는 항상 아버지를 따라다녔다. 날짜에 따라서 대야 장, 함열 장, 연무 장, 삼례 장과 군산 나운주공시장 노점에서 일했다.

 

“작년에 일 시작할 때가 설 무렵이었어요. 대목이니까 평소보다 더 일찍 일어나야 해요. 하루에 김을 구울 수 있는 양이 한정되어 있거든요. 손으로 직접 구우니까요. 그 날 구운 김만 파니까 새벽 3시부터 자리를 잡고 김을 구워요. 나운주공시장은 명절이나 주말에는 노점을 하라고 열어줘요. 평일에는 교통 혼잡 때문에 안 되고요.”

 

패션모델처럼 큰 키(186cm)에 얼굴까지 미남. 런웨이를 걸어도 어울릴 것 같은 성수씨가 오일장에서 구이 김 파는 일을 한 지도 1년 넘었다. 아버지 혼자 장사하던 때보다 매출이 팍 올랐다. 성수씨는 그냥 재미있다. 일하러 장에 다니면서도, 여전히 사람 구경하는 것에 질리지 않는다. 사람들이 “젊은 사람이 나와서 애쓰네”라고 말을 건네는 것도 좋다.  

 

오일장에서 즉석 구이 김을 팔기 위에서는 먼저 김을 재어야 한다. 기름과 소금이 나오는 기계에다 손으로 김을 한 장씩 넣으면서 재는 작업에도 레시피가 있다. 김의 두께, 계절, 날씨에 따라서 기름이나 소금 양이 달라진다. 여름에는 금방 눅눅해지니까 습기를 뺀 김을 쓴다. 이틀에 한 번 꼴로 하루 8시간씩, 아버지와 김 재는 일을 하는 성수씨가 말했다.

 

“한 2년은 해야 김 재는 법을 알 것 같아요. 지금도 다 몰라요.”


성수씨는 처음 3개월 동안은 아버지와 같이 일했다. 함께 김 굽고, 포장하고, 손님들한테 김을 팔았다. 어릴 때처럼, 아버지 일을 돕는 기분으로 일했다. 작년 5월부터 성수씨는 아버지와 각자 다른 오일장에 가서 장사한다. 아버지가 삼례 장에 가면, 성수씨는 대야 장에 가는 식으로. 하루 일이 끝나고 나면, 아버지는 성수씨에게 10만 원씩 주었다. 

해고당한 아픔도 아물었는데 갑자기 회사에서 “정규직으로 와라”는 연락이 왔다. 정규직, 사람을 흔드는 말. 성수씨 마음은 자꾸 그리로 갔다. 그래서 되물었다. 원래 함께 입사했던, 여전히 그 회사에 다니는 성수씨의 친구도 같이 정규직이 되는 거냐고. 회사 측은 “김성수씨만!”이라고 했다. 그가 회사로 다시 갈 이유는 없었다. 김 장사 하는 일이 더 좋아졌다. 

 

 

“저희 김은 미리 굽지 않아요. 현장에서 굽는 게 원칙이에요. 구이 김은 오래 두면 눅눅해지고 냄새가 나요. 맛도 다르고요. 방부제가 들어있고 밀봉되어 있는, 마트 김과는 달라요. 군산에 여행 오는 사람들이 많아지면서 대야 장도 덩달아서 장사가 잘 돼요. 저희 김을 먹어본 사람들이 택배 주문도 많이 해요. 김 봉지에 아버지 핸드폰 번호가 있거든요.”

 

혼자서 맞는 여름 장사, 처음에 성수씨는 선크림을 꼼꼼하게 바르고 나갔다. 아스팔트로 된 시장 바닥은 한낮이 되기도 전에 뜨거워졌다. 김 굽는 기계에서 나오는 열기까지 더해지니까 더 덥게 느껴졌다. 선크림은 땀과 함께 흘러내렸다. 따갑게 눈을 찔렀다. 성수씨는 맨 얼굴로 장사하는 쪽을 택했다. 햇볕에 그을려도 곧 무심해졌다.

 

명절 대목 때 빼고는 오일장 장사는 아침 8시에 시작한다. 성수씨는 낮밥 먹을 시간까지 대체로 소변은 참고 견딘다. 참 고맙게도 지금까지 배탈이나 설사의 습격은 받지 않았다. 밥은 맛있게 먹거나 꼭꼭 씹어 먹을 수 없는 처지, ‘흡입’하는 습관이 들었다. 노점 하면서 겪는 화장실 문제와 식사 해결, 또 다른 어려움은 무얼까. 성수씨는 말했다.

“사람 상대하는 게 힘들 때가 있어요. 구이 김 한 봉지에 2천 원인데 12장 들었어요. 세 봉지 사면 5천 원이고요. 근데 사람들은 시장 물건은 우선 깎고 봐야 한다는 심리가 있어요. 마트에서는 그냥 사잖아요. 노점이라고, 오일장에서 장사하니까 억지로 김을 빼 가려고 하는 분도 있고요. 아버지가 ‘그럴 때는 차라리 팔지 말아라’고 가르쳐 주셨어요.”

 

 

성수씨는 따로 쉬는 날이 없다. 그의 아버지는 몸이 아파도 참는다. 심하게 아프면, 병원 가서 주사 한 대 맞고서 바로 장이 서는 곳으로 간다. 성수씨는 아버지한테 “도대체 왜 그러시냐?”고 물었다. “손님들과 약속이다”라는 아버지의 말을 이해 못 했다. 그는 직접 오일장을 다니면서야 알았다. 장을 기다린 사람들, 빈 걸음으로 돌아가게 할 수 없다는 것을. 

 

김도 눅눅해지고, 장사마저 잘 안 되는 여름. 성수씨와 아버지는 그래도 빠지지 않고 각자 맡은 오일장에 간다. 본격적인 장마철은 공식적인 휴가. 성수씨는 퍼붓는 장대비를 보며 배시시 웃는다. 천안에 사는, 동갑내기 여자 친구 김가운씨랑 놀러 다닐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올해 장마도 마냥 기다려진다. 그는 “결혼도 장마철에 해야죠” 라고 말하면서 웃었다.


성수씨는 “장사하면, 주말에는 못 쉬겠구나” 각오를 하고 시작했다. 틈새 시간을 이용해 놀 수밖에 없다. 오후 6시에 파장, 집에 와서 씻고 밥 먹고 나면 오후 8시. 원래 패션에 관심이 많았던 청년은 차려입고 나가서 친구들이랑 맥주를 마신다. 친구들은 대부분 학생, 공부하면서 진로 걱정을 한다. 일 하고 있는 성수씨를 부러워도 한다.

“저처럼 김 장사 해보고 싶다는 친구들도 세 명 있었어요. 제가 ‘와서 한 번 해 봐라’고 했죠. 시장은 겨울에는 춥고 여름에는 더워요. 서 있어야 하고요. 일주일 정도 하면, 다시 생각해보겠다고 해요. 그래도 명절 대목에는 친구들이 와요. 제가 자란 회현하고 대야 장하고 가까워서 도와주려고요. 걔네들이 집으로 돌아가면서 그래요. ‘진짜 돈 벌기 힘들다’고요.”

 

그는 친구들이 대학에 갈 때, “나도 한 번 가봐야지”라고 하지 않았다. 하고 싶은 공부가 생기면, 그때 가서 해도 늦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다. 바쁜 부모님을 돕기 위해서 엄마처럼 챙겨준 누나들은 성수씨 대신 폴리텍 대학과 원광대학교에 원서를 낸 적도 있다. “제가 좀 강직한 편이에요”라고 말하는 성수씨는 솔깃하지 않았다.       

“어떤 문제가 생기면, 푸는 데 시간이 필요해요. 하던 걸 그만두고 고민하는 사람들도 있는데 저는 일 하면서 고민하는 타입이에요. 회사 다닐 때도, 그 안에서 진로나 이직을 고민했어요. 해고당하고 나서도 바로 김 장사를 시작했고요. 오일장 도는 장사가 저랑 안 맞았다고 해도, 저는 일하면서 다른 일을 찾았을 거예요. 근데 이 일은 저랑 진짜 잘 맞아요.”

 

 

오일장은 노점이라서 눈비가 오면 힘들다. 찾아오는 사람들은 주로 노년층이다. 여전히 대야 장이나 삼례 장은 규모가 크고 사람도 많다. 동남아에서 시집 온 젊은 새댁들이 고향에서 먹던 물고기를 살 수 있는 곳도 오일장이다. 하지만 성수씨는 ‘언젠가 노점을 접을 때가 오겠구나’ 생각을 한다. 마트에 입점해서 구이 김 파는 것을 고려해 본 적도 있다. 

 

김 공장을 해보겠다고 생각한 적은 없다. 성수씨네 김은 ‘즉석에서 손으로 구워 파는 김’이 모토이다. 공장에서 굽고 방부제를 넣어 압축 포장한 김은 그의 철학과 맞지 않다. 성수씨는 김과 관련된 일을 할 수 있는 데까지 해보고 싶다. 그의 아버지 김신근씨는 회현에 김 냉동 창고를 짓고, 더 많은 즉석 김을 굽고 싶어 한다. 아들 성수씨와 함께.

“아버지가 저를 많이 배려해 주세요. 올해부터는 수입의 절반을 저하고 나눠요. 그날 번 것을 합산해서 똑같이요. 제가 나운주공시장에서 많이 팔고, 아버지는 장사가 잘 안 되는 연무나 강경, 함열 장에서 팔 때가 있어요. 거기 장들은 작고, 사람들도 별로 없어요. 그래도 장에 오는 손님들이 빈손으로 집에 가면 안 되니까, 아버지가 가는 거예요.”

 

성수씨는 김 장사 하면서 무더운 여름과 칼바람 부는 겨울을 지났다. “더울 때 더운 데서 일하고, 추울 때 추운 데서 일하기 싫으면 공부해!”라고 호통 친 어떤 개그맨의 말은 성수씨에게 통하지 않았다. 스물네 살 청년 성수씨는, 자신이 ‘좋은 직업’에 대한, 우리 사회의 통념을 바꾸고 있다는 것을 알까. 그는 말했다. 

 

“오늘이 삼례 장이에요. (인터뷰) 끝났으니까 가야죠. 큰 장이라서 재밌어요.”

 



군산 대야장 (1일, 6일)
군산 나운주공시장 (주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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