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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동신 군산 시장,“시민과 함께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글 : 조종안(시민기자) / chongani@hitel.net
2013.09.01 10:55:36 zoom out zoom zoom in facebook twitter kakaotalk kakaostory

 


 

“문동신 시장, 그 양반 옥구군 산북리(군산시 산북동) 사람이야.  나하고 위 아랫집에서 살았지.  학자 집안이고, 양반이었어.  문 시장 부친은 농사도 지으면서 서당 훈장도 했는데 내가 그 서당에 다녔지.  문 시장은 나이가 어려서 잘 모를꺼여.(웃음)  순종황제가 돌아가셨을 때 문 시장 아버지가 흰옷에 백립을 쓰고 석 달 동안 식음을 전폐하고 물만 마시면서 지낸 양반이야.  민족정신이 강한 분이었지…….” 하반영(97) 화백은 문 시장 형제(8남매)들 이름과 직업을 줄줄이 꿰면서 “서당 뒤 언덕에 신령을 모신 당산(堂山)도 있었는데 사라졌다”며 아쉬워했다.  당산은 순종황제가 돌아가셨을 때 아이들도 올라가 절을 올렸던 곳이었다고.  하 화백은 “이웃이었던 문 시장이 '최고경영자(CEO) 시장'으로 시정을 잘 살피고 있어 고맙다”며 덕담을 덧붙였다.

 

일제강점기(1938) 군산에서 태어나 초중고를 마치고 서울로 유학, 대학을 다녔다.  1960년 육군 소위 입관.  공병 대위로 경부고속도로 공사에 참여했다.  1969년 예편 후 농어촌진흥공사에 입사, 기획본부장과 부사장을 거쳐 1997년 최고 경영자 자리에 오른다.  국내 공기업 최초로 내부 승진하여 농업기반공사 사장이 되고, 6년을 연임하면서 공직생활의 정점을 찍는다.  고향에 내려와 민선4기(2006) 시장취임, 2010년 연임에 성공한다.  이상은 문동신 군산 시장 스펙이다.

 

 

 

명산시장 쇠머리 국밥과 대복루 짜장면 맛 잊지 못해

문 시장이 나고 자란 동네는 농가 70~80세대가 옹기종기 모여 사는 고즈넉한 마을로 사람들은 ‘원삼북’이라 불렀다.  집안은 중농(中農)으로 끼니 걱정은 안 했다.  아버지에게 한학을 수학하면서 일찍이 ‘호연지기’를 길렀다.  초등학교 실력은 반에서 3~4등으로 상위그룹에 속했다.  우등상은 몇 차례에 그쳤지만, 개근상은 6년 내내 받았다.  문 시장은 “아버지가 워낙 엄격하고 완고해서 남들이 다하는 참외 서리 한 번 못해보고 자랐다”며 껄껄 웃는다.

 

중학교에 입학해서도 공부를 잘했다.  운동도 잘했다.  학교 대표선수로 뽑혀 육상대회에 출전도 했다.  전국 역전마라톤대회 군산시 대표로 출전했으며 마라톤 풀코스 완주 경험도 있다.  오전 4시에 기상해서 조간신문을 완독한 뒤 테니스로 몸을 풀고 출근하는 문 시장은 “나이를 먹었음에도 강인한 체력을 유지하면서 고혈압이 없고, 체지방이 생기지 않는 이유는 성장기에 달리기로 체력을 단련한 영향이 크지 않았나 싶다”고 말한다. 

 

 

 

가장 즐겨 불렀던 노래는 <보리밭>.  가사가 순박하고, 가슴을 일렁이게 해서 지금도 기억한단다.  친하게 지낸 동창 중에는 군산지청장과 전주지검 검사장을 지낸 김현철 급우를 잊지 못한다.  존경하는 스승은 자신을 누구보다 아껴주었던 이세명 선생님.  3학년 때 영어를 가르쳤던 분으로 서울에서 직장생활을 할 때 부음 소식을 듣고 부안까지 조문을 다녀오기도 했다.

 

학창시절 단골 중국집은 어디였는지 궁금하다고 하자 문 시장은 잠시 생각에 잠기더니 “산북리에서 군산까지 4km가 넘는 거리이고, 물자세(무자위)를 밤새도록 돌려야 모를 심을 수 있는 시절이어서 공부하랴, 장남으로 농사 도와드리랴 바빠서 시내에 자주 나오지 못했기 때문에 단골 중국집은 없었다”며 급우들을 따라가서 맛보았던 쇠머리 국밥과 짜장면 맛을 떠올린다.  “농촌은 물론 도시에 사는 사람도 보리밥 먹기조차 어려웠던 시절이어서 학생이 짜장면을 먹는 것은 특별한 날이나 가능했는데요.  급우들과 함께 맛본 짜장면과 쇠머리 국밥을 잊지 못합니다.  국물이 구수하고 반찬이 맛깔스러운 쇠머리 국밥집이 명산시장에 있었고, 명산동 사거리 홍약국 옆에 있던 중국집 대복루(大福樓) 짜장면 맛이 일품이었거든요.  그래서 그런지 쉬는 날에는 집사람(아내)과 함께 다니면서 칼국수도 사 먹고, 백반도 사 먹고, 짜장면도 사 먹으면서 추억여행도 하고 상인들과 대화도 나눕니다.  그렇게 많은 사람을 만나다보면 군산의 경제 동향도 어느 정도 감을 잡을 수 있지요.”

 

 

 

오늘의 문동신이 있기까지 절반 이상은 아내 덕이죠!

고등학교 성적은 중간 정도.  2학년 학기가 시작할 무렵 생활의 ‘멘토’였던 아버지가 갑자기 돌아가시고 그 충격으로 공부를 소홀히 했기 때문.  아버지는 어렸을 때 한학을 깨우쳐주었고, 학창시절에는 상담자이자 길잡이였다.  채소행상을 하면서 8남매를 돌보는 어머니를 위해서라도 마음을 추슬러야 했다.  그러나 마음뿐.  한동안 상실감에 빠진 결과는 당시 고등학교 졸업생들이 소망하던 서울대 도전 실패.  곧바로 육군에 자원입대한다.

 

“전화위복이라고 할까요.  군에 입대해서 결혼도 하고 제 운명이 바뀝니다.  1959년으로 기억하는데요.  훗날(1971~1974) 문화공보부 장관과 문교부 장관을 지낸 홍종철 씨가 우리 부대 대대장이었어요.  그분이 저를 어떻게 봤는지 ‘너 사병으로 제대하지 말고 장교로 임관하라!’라고 권하는 거예요.  그분의 추천 덕에 엔지니어도 아닌 제가 공병장교가 됐고, 중위 때 친구소개로 지금의 아내를 만나 결혼했으니까요.  저와 동갑내기 아내는 강경여고를 나왔는데 집에서 학교까지 왕복 22km를 걸어 다니면서 어렵게 졸업했다고 그래요.  쥐꼬리만한 월급에도 불평 한마디 없이 2남 3녀를 잘 키워낸 아내에게 항상 미안하게 생각합니다.  오늘의 문동신이 있기까지 절반 이상은 아내 덕이거든요…….”

 

문동신 중위는 대위로 진급해서 경부고속도로공사에 참여한다.  국토 개발에 참여한다는 사명감으로 열심히 일했다.  월간 평론지 <경제풍월> 배병휴(전 매일경제신문 논설위원) 대표가 얼마 전 모 TV 대담 프로에 출연해 문 시장 이름을 거명하면서 ‘당시 국토건설을 위해 계급장에 먼지가 쌓여 보이지 않을 정도로 열심히 일했던 육군 장교가 지금은 군산 시장을 하고 있더라’며 칭찬을 아끼지 않았을 정도.  문동신 대위는 1969년 2월 예편과 함께 농어촌진흥공사에 입사한다.  그는 “농어촌진흥공사 계장 시절 군산상고가 제26회 황금사자기 결승에서 9회 말 역전 우승의 쾌거를 이루던 1972년 7월 19일 현장(서울운동장 야구장)에 있었다”며 그날의 감격을 되살렸다.

 

“경기고 영어 교사로 재직하는 강송식 동창과 함께 갔는데, 군산상고가 9회 말 역전승 하는 순간 기쁜 나머지 두 사람이 동시에 ‘더그아웃’에서 뛰어내렸어요.  그날 이후 군산 시민의 ‘조직문화’에 대해 곰곰이 생각했는데, 역전의 명수는 우연히 얻어진 게 아니라 시민의 저항정신, 끈기 등의 결집체라고 생각했죠.  당나라 장수 소정방에게 항거했던 백제 오성인의 애국충절과 한강 이남에서 최초로 일어난 3·5 만세운동, 옥구 농민항일항쟁 등의 정신이 결집, 끈기와 투혼의 '역전의 명수'를 낳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입니다.”

 

 


 

농민 학정의 대명사였던 ‘수세’를 폐지한 주인공

문 시장의 좌우명은 ‘모든 문제는 만나야 해결되고, 인연은 만나야 이루어진다.’는 뜻이 담긴 인연지사(因緣之事).  농어촌진흥공사에 근무하던 1982년 2월 25일 직원 다섯 명과 함께 감사반장으로 제주도 출장을 나갔다가 어숭생 올라가는 길목에서 우연히 만난 스님으로부터 받은 휘호로 예술적인 가치는 없지만, 뜻이 마음에 와 닿아서 지금도 아파트 내실에 걸어놓고 있다고 한다.

 

그는 영화 <사운드 오브 뮤직>을 여섯 번 봤다고 한다.  영화에서 흐르는 ‘에델바이스’에서 큰 감명을 받았고, 가족을 사랑하고 애국심이 강한 폰 트랩 대령(크리스토퍼 플리머)과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 솔직함과 포용력을 갖춘 마리아(줄리 앤드루스)의 감명 깊은 연기가 너무도 인상적이었다는 것.  1970년대 인기 주간지 <선데이 서울>도 흥미 있게 읽었다는 문 시장. 그는 “한국배우는 최무룡, 외국 배우는 <벤허>의 주인공 찰턴 헤스턴을 가장 좋아한다”며 옛 시절을 회상한다.

 

문 시장은 한국농촌공사 사장 시절(2000년), 근현대사 농민 학정의 대명사였던 수세(水稅)를 폐지한 주인공이기도 하다.  자료에 의하면 당시 수세 폐지로 한국농촌공사는 900억 원의 적자가 예상됐으나 인력과 조직의 군살을 빼고 사업 다각화와 신규 사업 확대를 통해 경영수지 개선을 이뤄 1년 만에 흑자로 전환한다.  그 후 크고 작은 농업 관련 단체(126개 법인)를 통합, 성공적 공기업 개혁 모델을 제시한 인물로 평가받는다.

 

 


 

풍요롭고 행복한 한가위 보내시기 바랍니다!

문동신 시장은 30대 중반 늦깎이로 대학졸업, 54세 연세대 경영대학원 경영학 석사, 68세 중앙대 대학원에서 경제학 박사학위를 받은 만학도이기도 하다.  그는 동기들보다 9년 늦게 대학을 졸업한 것에 대해 “고교시절 공부를 게을리 한 ‘자신에 대한 복수’였다”고 거침없이 말한다.  “지금도 열심히 공부하고 있다”며 허허롭게 웃는 그는 “임기 10개월을 남겨놓고 있지만, 시민과 함께 최선을 다하겠다!”고 각오를 밝히면서 군산 시민에게 인사말을 전했다.

 

“존경하는 군산 시민 여러분!  그동안 풍(豊)·화(和)·격(格)을 갖춘 동북아 최고의 명품도시 건설을 위해 노력해왔습니다.  개인적으로는 미진한 점도 있었지요.  하지만 기대 이상으로 성과가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민선 4기 때도 믿음과 지지를 보내주셨는데 민선 5기 때도 믿고 도와주셔서 힘이 됐습니다.  임기가 10개월 정도 남았지만 50만 국제관광 기업도시 조성을 위해 시민과 함께하는 자세로 시정을 살피겠습니다.  민족의 전통명절 추석(秋夕)이 20여 일 앞으로 다가왔습니다.  고향을 찾아 조상님 성묘도 하고, 일가친척을 만나 정겨운 대화를 나누면서 송편도 먹고……, 많은 출향민이 군산을 찾아올 것으로 예상됩니다.  고향을 찾아오신 방문객과 시민 여러분, 풍요롭고 행복한 한가위 보내시기 바랍니다.”

 

 

 

일본 극우의 중심인물 아베 총리의 망언 안타까워! 경술국치 103주년, ‘이 날을 목 놓아 통곡하노라’

문동신 시장과 인터뷰를 마치고 근대역사박물관 1층에서 열리는 독도 관련 전시회와 3층에서 개막한 경술국치 103주년 추념 기획전시회장을 돌아봤다.  두 전시회는 역사를 자위적으로 해석하고 왜곡하는 일본 아베 총리의 망언이 계속되고 있는 가운데 열리고 있어 의미를 더했다.  문 시장은 독도경비대가 태극기를 게양하는 모습이 담긴 사진을 가리키며 “경술국치일을 앞두고 한일 관계가 심각하게 꼬여 있는 이때 열리는 전시회여서 더욱 뜻있게 생각한다”며 역사적인 의미를 부여했다.  이어 “먼 나라 독일은 총리가 수차례 사과를 했음에도 가까운 나라인 일본은 극우의 중심에 선 아베 총리가 망언을 계속하면서 멀리 지내는 것이 정말로 안타깝다”고 덧붙이며 아쉬워했다.

  

1층 전시회는 하늘에서 내려다본 독도(서도와 동도)와 독도의 일출 등 다양한 사진을 비롯해 고지도에 나타난 독도, 독도의 지형과 지질 및 위치, 동해의 바위섬 독도의 위치, 독도경비대, 일본의 독도 침탈, 도쿠가와 막부의 질문에 대한 돗토리번 답변서, 강원도 관찰사 이명래 보고서, 독도 주민들의 삶과 발자취, 대한매일신보와 황성신문 등이 전시되고 있다.  3층 전시실에서는 이토히로부미(伊藤博文) 친필 유묵을 비롯해 을사오적 중 한 명인 권중현이 매국의 대가로 일제로부터 받은 한국병합기념장 수여증서, 조선총독부경찰관서 직원록, 일본군 장교들 군도와 권총, 조선 여성들이 만든 군 위문품, 히로시마 원폭 투하 사진, 일본 무조건 항복 조인식 장면, 일본 전범 재판기록, 일제강점기 군산에서 발행된 <군산일보> 등 100여 점이 전시되고 있다.

 

일제에 나라를 빼앗기기까지 과정에서 일어난 중요 사건들의 유물 자료와 조약문서, 수탈의 전진기지였던 군산의 실상과 더불어 이에 저항했던 우리 민족의 모습을 영상으로 볼 수 있는 이번 기획전은 ‘이날을 목 놓아 통곡하노라’라는 주제로 10월 15일까지 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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