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ggun 홈페이지에 오신것을 환영합니다.



메인 메뉴


콘텐츠

홈 > ARTICLE > 사회
노거수(오래되고 큰 나무)를 통해 보는 군산이야기
글 : 이진우 /
2021.09.01 13:45:46 zoom out zoom zoom in facebook twitter kakaotalk kakaostory

 

노거수(오래되고 큰 나무)를 통해 보는 군산이야기

세 번째 수탈의 일선현장을 지켜보았던 임피역의 나무들

 

김태휘

 

 

군산은 근대문화유산의 보고라고 이야기 합니다. 관광객들은 일제 강점기 지어진 군산의 유물을 보러 군산 시내로 향하지만, 정작 군산을 알려면 제일 먼저 군산의 가장 오래된 이름인 임피면부터 들러 군산의 역사부터 살펴봤으면 하는 생각입니다. 임피면은 통일신라시대 경덕왕 16(757) 당시 '고사재'란 지명을 임피로 바꾸었다고 하는데요, 임피를 한자로 살펴보면 임할 임(), 방죽 피()란 뜻입니다. 한자 뜻 그대로를 풀어보면 "방죽에 임한다라는 뜻이겠지요. 실제로 군산에서는 가장 많은 방죽을 보유하고 있는 지역일 것 같습니다. 그래서인지 군산의 옛 지명 임피는 단군 이래 가장 큰 토목공사인 새만금 방조제의 역사를 미리 알고 지은 듯 참으로 신기하기만 합니다.

 

예전에는 사람이 모이고 흩어지는 중심역할을 했던 곳이 철도역이었을 겁니다. 임피면 사람들에게 추억 어린 임피역은 현재 폐역입니다. 2005년 화물 취급이 중지되었고 2008년에는 여객취급도 중단돼 기차가 서지 않는 폐역이 되었지만, 당시 농촌지역 간이 역사의 전형적 건축기법과 철도 역사에 있어 사료로 가치를 인정받아 2005년 국가등록문화재 제208호로 지정된 장소입니다.


 

일제강점기 쌀 수탈의 전진기지 임피역(臨陂驛)에 가다

 

호남선의 지선으로 완공된 군산선(군산-익산간)1912년 개통됩니다. 이 철도선에는 오산, 임피, 대야, 개정 등의 간이역이 건설되는데 군산선 역사 중 유일하게 남아 있는 건축물은 임피역입니다. 임피역은 1924년 준공돼 간이역으로 영업을 개시했고, 현재의 역사는 1936년 신축된 건물입니다. 당시에는 김제 만경평야 등에서 수탈한 쌀을 군산항으로 실어 나르기 위한 집산지 역할을 했던 쓰라린 기억도 있지만, 해방 후에는 군산이나 익산으로 학교나 직장을 다니던 학생들과 직장인들에겐 소중한 추억의 간이역입니다. 본래 임피면 읍내리에 건립될 예정이었으나 산이 끊기고 기()가 훼손된다는 유림들의 풍수 지리적 이유로 지금의 술산리를 거치게 됐다고 전합니다. 임피역 건물은 구조가 간단하면서도 아름답습니다. 전면과 후면 입구를 맞배지붕으로 구성하였고, 대기실 출입구에 차양을 덧달아 본채 지붕과 차이를 두어 입체감과 함께 그늘을 제공하는 등 당시 농촌지역 소규모 간이역사의 전형적인 건축양식과 기법을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 1936년에 현 위치에 지어진 임피역사 -

역사 뒤로는 같은 키 높이의 네그루 나무가 보인다. 거의 같은 R70 내외의 근원직경을 가진 나무로, 노거수라고 하기에는 아쉬움이 있지만 임피역사와 같은 시기에 식재되어 일제강점기의 쌀 수탈 현장을 목격하고 광복이후 근대를 살아 온 우리 부모님들의 생활모습을 다 보고 들었을 살아있는 산 증인이기도 하다.

  

 

역사내외부에는 과거의 모습을 재현한 조형물이 많다

 

 

역사 바깥으로는 당시부터 있었던 우물과 오포대의 모습을 볼 수 있는데요. 교회당 종탑처럼 생긴 빨간색 오포대는 매일 정오가 되면 사이렌을 울려 12시가 되었음을 알려준 탑입니다. 시계가 귀하던 시절 사이렌이 울리면 하던 일을 멈추고 점심을 먹으러 부산하게 움직이던 모습이 떠오릅니다(지금도 정오에는 약 10초간 싸이렌이 울립니다). 역사 외부에는 새마을호 객차 2칸을 이용한 전시관과 채만식의 단편소설 <레디메이드 인생>의 한 장면을 조형물로 연출하고 있는 모습도 보입니다. 그때 그 시절 간이역 풍경의 동상과 임피역 기차 시간표, 요금표도 있으니 코로나로 지친 심신을 달래볼 겸 추억여행으로 다녀오시면 의미가 있을 것 같습니다.

 

역사(驛舍) 함께 한 시간, 그 시간을 기억하는 나무를 보러 가다

 

폐역이 된 이후 군산시에서는 임피역사 주변을 근대역사문화 복원 차원에서 정비를 하여 지금은 어엿한 관광코스로서의 역할을 수행하고 있습니다. 필자가 방문한 일요일에도 한적한 이곳까지 아이들을 데리고 오는 젊은 부부들의 모습을 심심찮게 보게 됩니다. 두어 시간 머물며 산책하고 둘러보기에는 이만한 장소가 없어 보일 정도입니다. 한적함도 좋지만 역사현장을 고스란히 느낄 수 있어 더 매력이 있습니다. 뚜렷한 색감의 흑과 백이 아닌 약간은 수채화 느낌의 장소라고 할까요? 강추합니다.

 

임피역사 뒤편으로는 같은 키높이를 가진 네그루의 나무가 보입니다.(임피역사 사진 참조) 왼쪽으로부터 편백이 보이고 다음으로는 암수 두 그루의 은행나무 그리고 가장 오른쪽에는 개잎갈나무로 불리는 히말라야시다입니다. 또 그 옆으로는 언 뜻 보아 팽나무인 듯 보이는데 가까이 가서 보면 깜짝 놀랄만한 크기의 단풍나무도 있습니다. 이 정도 굵기의 줄기를 본 적이 언제인가 싶을 정도입니다. 나무 조각가라면 붉은 목질부를 탐내기에 충분할 것 같네요.


 

 

2년의 시간이 흘렀음에도 거의 같은 모습을 보여주는 편백의 모습. 한 해 한 해가 쌓여 어른 나무의 모습을 갖췄으리라 생각하니 급하게 살아가는 현대인의 모습을 그려보게 된다. 편백은 나무중에서 가장 많은 피톤치드를 뿜어내는데 하루중 오전 10시 전후가 가장 좋다.

 

 

 

 

역무원 조형물이 있는 역사 개찰구를 빠져나오면 두 그루의 은행나무와 만나게 됩니다. 암수 두 그루인데요. 은행나무의 암수는 모습을 보면 분명히 차이가 있습니다. 암나무는 가지를 벌리고 있는데, 이는 통풍과 채광을 잘 되게 하여 좋은 열매의 결실을 유도하기 때문입니다. 반면 수나무의 경우는 가지가 하늘을 향해 쭉쭉 뻗어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현장에 오셔서 판단해 보시길요^^

 

이 두 그루의 은행나무는 역사를 나서는 주민들의 모습을 기억하겠지요. 15분 걸렸던 익산역과 20분 걸렸던 군산역을 오가던 학생들의 통학길과 생필품의 구매와 판매를 위해 오갔던 주민들의 모습들.....워낙에 잘 자라고 이식도 쉬워서 전국 어디에서나 잘 자라는 나무이지만 종교적인 특성을 가진 나무이기도 하지요. 향교나 서원의 앞마당을 차지하기도 하고 사찰에서도 자주 만나는 나무이기도 합니다.

 

 

개찰구를 나오자 만나는 두 그루의 은행나무 은행나무옆의 히말라야시다

 

 

은행나무 옆으로는 조금은 낯설은 모습의 나무를 마주하게 됩니다. 파키스탄의 국목(國木)인 히말라야시다입니다. 원산지는 바로 히말라야의 북서부지방입니다. 몬순기후의 영향을 받는 지역으로서 저지대에 속하며 우리나라에서는 대전 이남지역에서 잘 자라는 나무이기도 합니다. 수도권에서는 거의 볼 수 없는 나무이기도 하죠. 사계절 푸르름을 유지하는 상록침엽수입니다. 잎갈나무의 한 종류인데요, 잎을 매년 간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지만 낙엽송이라 부르는 일본잎갈나무에 비해 히말라야시다는 개잎갈나무로 불려집니다. 그 이유는 잎을 갈지 않기 때문이지요. 일반적으로 나무 이름앞에 자가 붙으면 대체적으로 그 나무보다는 못하거나 반대되는 속성을 가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히말라야시다 옆으로 잘 펼쳐진 수형을 뽐내는 나무 한그루가 보입니다. 수피가 매끄럽고 굵기가 상당한걸 보니 팽나무? 목련? 인가 하며 가까이 가보니 생각지도 못한 나무네요. 단풍나무입니다. 줄기 밑둥의 굵기가 대단합니다. 벌써부터 가을 단풍이 기대됩니다. 올 가을에는 무조건 달려가야겠습니다. 안타까운건 나무 윗부분의 가지가 많이 말라버렸습니다. 잎도 나지 않는 것을 보면 일부 가지는 고사한 것으로 보입니다. 일제강점기 수탈의 현장을 보며 몸과 마음이 아팠을 터이고 한국전쟁을 지나며 많은 눈물을 흘렸을 겁니다. 이제부터라도 관리를 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입니다. 이 정도의 굵기를 가진 단풍나무는 보기가 쉽지 않거든요.

 

 

역사 오른편의 재래식화장실 앞에 위치한 단풍나무의 모습(20215)

 

 

이곳 임피역은 개찰구를 나오면 잘 꾸며진 정원을 만나는 느낌입니다. 네 그루의 나무사이로는 오솔길도 있어서 길이가 짧긴 하지만 나무 아래의 벤치에서 시집 한 권 읽어 보고픈 장소입니다. 철길 건너에는 역사를 지을 때 기념으로 식재한 왕벚나무도 있으며 고즈넉한 분위기를 자아내는 장소이니 꼭 다녀오시길 추천 드립니다.

0개의 댓글이 있습니다.▼ 닫기
댓글 목록
댓글 등록

등록


카피라이터

주소 : (우)54020 전북 군산시 절골3길 16-2 , 출판신고번호 : 제2023-000018호

제작 : 문화공감 사람과 길(휴먼앤로드) 063-445-4700, 인쇄 : (유)정민애드컴 063-253-4207, E-mail : newgunsanews@naver.com

Copyright 2020. MAGAZINE GUNSAN. All Right Reserved.

LOGIN
ID저장

아직 매거진군산 회원이 아니세요?

회원가입

아이디와 비밀번호를 잊으셨나요?

아이디/비밀번호 찾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