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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만식, 눈뜬 채 임종
글 : 한상희 작가 /
2021.09.01 14:26:14 zoom out zoom zoom in facebook twitter kakaotalk kakaostory

이번 호에서는 채만식의 천재성과 성격분석에 도움을 주기 위한 일환으로, 탈고됐지만 공개된 필자의 대하소설(大河小說) 일부를 공개한다. 끝까지 읽어봐 주었으면 한다.

 


 

 채만식, 눈뜬 채 임종

이틀 후, 카프 문학의 선구자 임화는 채만식과 종로 청진동 해장국 집에서 만나 대포 한 잔씩 주고받았다. 주거니 받거니 하는 와중에 채만식이 얼큰하게 취하자, 임화는 서서히 그의 속내를 드러내기 시작했다.

형님!”

그의 혀도 약간 꼬부라져 있었다.
?”
요즘도 집필 하십니까?”

집필은 개뿔⋯⋯ 생각해봐. 내가 지금 집필할 처지인가.”

채만식은 1924년 조선문단에 단편새길로를 발표해 등단하였다. 그는 카프에는 참여하지 않았지만 희곡 <인형의 집을 나와서, 1933> 등에서 엿보이는 초기의 작품 경향은 카프의 경향파 문학과 심정적으로 유사한 점이 있었기 때문에, 그간 동반자 작가로 분류되어 오기도 했다.
왜요? 그 좋은 필력에⋯⋯.”
내 필력이 좋긴 뭐가 좋아? 일제 정책에 마지못해 아부나 한 주제에

채만식이 1934년 발표한 단편레디메이드 인생은 지식인 실직자의 모습을 풍자적으로 그리고 있는 대표작 중 하나이다. 이 작품의 반어적이고 풍자적인 회화기법은 채만식의 작품에서 자주 관찰되는 특징으로, 채만식은 이 작품을 계기로 사회 고발적 동반자 문학에서 냉소적 풍자 문학으로 작풍을 전환했다.
일제가 그냥 인정해준 겁니까? 형님처럼 탁월한 필력이나 되니깐 관심 갖고 지원해준 거지요. 지금이야 말이지만, 당시 일제에 아부 못해 안달 난 문인들이 얼마나 많았습니까? 그러나 형님 같은 경우에는 자발적이 아니라, 어쩔 수 없이 잠시 참여한 것뿐이고요. 우리가 간과하지 말아야 할 것이 있다면 바로 그 점입니다.”

그럼, 자네는 필력이 없어서 감옥에 갔었나?”
저야 뭐. 형님에 비하면 조족지혈이지요.”
사실, 나는 자네가 부럽다네.”

왜요?”

나도 그 때 자네처럼 카프 문학에 합류해 지조를 세웠다면, 오늘 날 이런 수모만은 안 당했을 텐데⋯⋯.”

채만식은 1936년부터 기자직을 버리고 본격적인 전업 작가의 길로 들어섰다. 그러나 그는 농촌의 현실을 그린 <보리방아>가 검열로 인해 연재 중단되는 수모를 겪기도 했다. 이후 대표작인 중편 <태평천하, 1938>와 장편 <탁류, 1938>를 발표해 작가적인 입지를 확실히 굳혔다. 역설적인 풍자 기법이 돋보이는태평천하1930년대의 부조리한 사회상을 바라보는 냉소적 시선에 통속성이 가미된 <탁류> 이후, 매일신보에 연재한 <금의 정열, 1939>은 완전 통속 소설이라는 냉소를 받았다.

지금부터라도 나라를 위해 열심히 집필활동을 하시면 되죠.”
지금에 와서 누가 날 알아주겠나? 親日 오명을 쓰고 있는 마당에⋯⋯.”

한번 실수는 병가지상사(兵家之常事)라는 말도 있잖습니까?”

이 말은 한번 실수로 낙담하지 말라는 뜻이다.

내 낙담 안할 수 있겠는가? 親日로 낙인찍힌 현실에서 말일세. 이제 다시 집필한다고 해서 나를 누가 알아주겠는가? 주홍글씨처럼 난 이제 끝장이라네.”

채만식의 작품 가운데 일제 강점기 말기에 발표한 <아름다운 새벽, 1942>, <여인전기, 1945>가 약간의 親日 소설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는데, 이러한 해석은 보기 나름이다.

그러지 마시고 힘을 내십시오.”
힘을 내서 어디다 쓰게? 밤에 마누라 괴롭힐 일밖에 더 있겠는가? 지금도 그 힘은 남아돌아간다네. 마누라가 끙끙 앓고 있어서 탈이지.”

형님?”
?”
박헌영 선생님을 아시죠?”
알지. 그 공산주의자 말하는 거 아닌가?”
공산주의자가 아니고, 엄격히 얘기해 사회주의자입니다. 그런데, 그 분이 형님의 필력을 아주 높게 평가하고 계십니다.”
그 공산주의자가 왜?”
사회주의자라니깐요. 그 분이 특히 탁류, 레디메이드 인생, 태평천하 등 형님의 모든 저서들을 섭렵한 후, 입이 닳도록 칭찬을 아끼지 않으시고 계십니다.”

그 사람이 문학 평론가인가? 난 공산주의자인 줄 알았는데⋯⋯.”
그 분이 문학에 대해서도 지대한 관심을 가지고 살아 온 편입니다. 특히 영시(英詩)분야에서는 거의 전문가 수준입니다.”

내 그 사람 한 가지는 인정하지. 그 사람만큼 지독하게 抗日운동을 한 사람은 없다고 생각하네. 그런 면에선 내 그 분에게 정말 미안한 심정이고 존경하지. 나는 그 사이 自意는 아니었지만 일제에 아부하면서 잘 처먹고 살았으니깐⋯⋯.”

그렇게 비관만 하지 마시고, 그 분과 함께 일해보시는 게 어떻겠습니까?”
저번에도 얘기 했지만, 난 공산주의는 싫네. 親日 한 번으로 치욕을 당했으면 됐지. 또 공산주의자로 낙인찍힐 일 있나? 이젠 억만금을 가져다준다고 해도 싫네.”

그 분이 형님의 필력을 정말 애석해하고 계십니다. 힘을 내 새로운 조국건설에 한번 동참해 보시지요.”

자네. 그런 소리하려면 다시는 내 앞에 나타나지 말게나. 내 인생에서 두 번 다시 실수하고 싶지는 않네. 고향에 내려가 우리 조상들 볼 면목도 없다네.”

채만식은 1943년부터조선문인보국회에 평의원으로 가담하여 친일 작품 활동을 하기 시작했다. 그의 이런 전력으로 인해 민족문제연구소의 명단 중 친일단체 부문에 포함되었고, 친일반민족행위진상규명위원회가 발표한 친일반민족행위 705인 명단에도 포함되었다.
왜 꼭 그렇게만 생각하십니까? 향후 우리들 세상이 올 수도 있습니다.”

자네 왜 그렇게도 어리석나? 여기 미국이 후원하고 있는 한 절대 공산주의가 발 부칠 곳은 없을 걸세. 자네도 일찌감치 찬물 먹고 속 차리게나.”
무슨 말씀을 그리 심하게 하십니까?”
아 글씨, 내 말이 맞는지 여부는 나중에 두고 보랑께.”

평소 채만식의 전라도 사투리는 그리 심하진 않았다.

저는 반드시 우리들 세상이 오리라 굳게 믿고 있습니다. 그 때 가서는 형님 두 번 실수하시게 되는 것입니다.”

야 이 새끼야! 내 앞에서 썩 꺼져.”

채만식은 앞에 있던 술잔을 집어 임화의 얼굴에 확 뿌려 버렸다.

그럼, 앞으로 어떻게 하실 생각이십니까?”

임화는 수건을 꺼내 얼굴과 얼룩진 상의를 닦아내면서도 미소를 잃지 않았다.

조만간 고향으로 내려가서 親日한 것에 대한 참회 글이나 써 만 천하에 고할 것이네. 그렇게라도 해야 내 마음이 편할 것 같네. 그래야 조상을 뵈올 면목도 생길 것 같고⋯⋯.”

그런다고 세상이 알아줍니까? 여전히 온통 親日놈들 밖에 없는데⋯⋯.”

임화는 특히 악덕 친일인사 가운데 박중양과 김태석, 노덕술, 최린 등을 극구 혐오했다. 박중양(朴重陽, 일본식 이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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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10.20 20:47:27) rec(178) nrec(16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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