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ggun 홈페이지에 오신것을 환영합니다.



메인 메뉴


콘텐츠

홈 > ARTICLE > 사회
돈키호테 정신이야 말로 청년 정신이지요 내 가족이 먹는 음식을 내놓습니다
글 : 이생곤 / grandlee@kmni.co.kr
2016.02.01 13:01:06 zoom out zoom zoom in facebook twitter kakaotalk kakaostory

돈키호테 정신이야 말로 청년 정신이지요

내 가족이 먹는 음식을 내놓습니다

라고 당당하게 말하는 '도마' 주호연 사장

 

이생곤(grandl)

 

"오나라 오나라 아주 오나, 가나라 가나라 아주 가나, 나나니 나려도 못노나니, 아니리 아니리 아니노네, 에야 디야 에야 나나니요, 오지도 못하나 나도 가마, 에야 디야 에야 나나니요, 오지도 못하나 나도 가마."

 

"요리 잘하냐구요?" 예전 드라마 대장금에서 나오는 '장금'이를 따라 갈만한 절대 미각을 갖고 있는 수준은 아니지만 정성만큼은 남자 '장금' 이라 불러도 부족하지 않을 자신이 있습니다.(웃음)."

 

34세 청년사업가 수송동 고깃집 '도마' 주호연사장……. 손님맞이에 그의 손과 발은 연신 바쁘다. 고기를 썰기를 마치니 된장국 조리법에 따라 소고기와 갖은 양념들을 솥에 넣고 커다란 국자로 휘휘 젓는다.

 

한참을 자기일에 집중하고 미안했던지 연신 고개를 숙이며 "죄송합니다. 죄송합니다." 최대한 바쁜시간을 피하고자 기자는 아침에 왔는데 기자의 판단 착오였다. "저녁시간이 매우 바쁘기는 하나 손님의 입맛을 사로잡기 위하여 식당일 중 중요한 일은 제가 직접합니다. 고기 썰기나 된장국은 저의 주된 업무중 하나이죠. 제가 아파서 병원에 입원하는 날이면 똑같이 고기를 썰고 똑같은 레시피를 써도 제가 있을때의 그 맛이 아니라고 합니다." (수줍은 웃음)

 

구도심 '영동' 을 놀이터 삼아 뛰어놀던 아이

 

"저희 부모님께서는 지금은 구도심이 되었지만 당시 최고 잘나가는 '영동' 에서 의류매장을 하셨어요. 혹시 'Lee' 라고 아시나요? 저 아기였을 때부터였으니 십 수 년은 되었을 겁니다. 지금은 물론 장사를 접으셨고요. 어릴 적부터 뛰어놀던 장소가 상가 중심가이다 보니 눈에 보이는 것은 모두 상가 매장이었죠. 자연스럽게 장사에 눈이 뜨인 것 같아요"

 

어릴 적 살던 동네 이야기가 나오자 주호연 사장은 물고기가 물 만난 것처럼 유쾌하게 이야기를 풀어낸다.

 

"저의 가족은 아버지, 어머니, 누나 그리고 저 11녀 예요. 공부 잘하는 누나에게는 공부 잘 하라는 잔소리가 심하셨지만, 저에게는 예외였습니다.(웃음) 공부를 잘 하지 못한 덕분(?)에 아버지, 어머니께서는 어릴 적 제게 많은 자유를 주셨어요. 덕분에 학창시절에는 어마 무시한 경험을 쌓을 수가 있었습니다."

 

주호연 사장은 시종일관 얼굴에 미소를 띄고 열을 다하여 이야기를 한다. 엉뚱하게도 그의 무책임한(?) 듯 보이는 초초긍정적인 성격에 대해 매우 궁금해졌다.

 

"저는 어떠한 상황에도 저를 믿습니다. 매사에 긍정적으로 살려고 합니다. 긍정적인 성격은 아마도 부모님의 영향이 크지 않나 싶습니다. 어릴 적 부터 뭘 하라고 강요하거나 압박을 하지 않았거든요. 대신 제가 하는 일에 묵묵하게 마음 적으로 많이 지원을 해주었습니다. 저에 대한 믿음이 확고한 부모님께 폐를 끼치면 안 된다는 생각이 있어요. 웃는 자에게 침을 못 뱉는다잖아요 그래서 더욱 많이 웃으려고 노력합니다."

 

그는 부모님에 대한 감사한 마음을 많이 갖고 있었다. 특별히 공부를 잘하지 못하던 아이 하지만 웃음기 많은 얼굴로 상냥하게 사람을 대하는 그에게 기자도 인터뷰 내내 즐거웠다.

 

사업에 눈을 뜨다

 

그의 나이 20, 일반적인 대학 새내기(군산대학교)들의 들뜬 생활과는 달리 그는 커피숍에 알바 생활을 했단다. 돈이 없어서가 아니고 스스로 돈을 버는 것이 자기 나름의 확고한 철학이었다. 하늘은 스스로 돕는 자를 돕는다고 했던가?

 

"당시 영동 시내에 젊은 층에 최고 인기 커피숍이었던 '제스티' 라는 커피숍에서 알바를 했어요. 고등학교에서 못했던 공부가 대학에 오니 더욱 싫어졌습니다.(웃음). 그래서 학교생활에서 시간을 낭비하는 것 보다 뭔가 의미 있는 일을 찾게 된 것이 커피숍 이었습니다. 사장님께서 너무도 잘해주셨습니다. 커피숍 영업이 끝나면 직원들 회식시켜주시고 얼굴에 피곤한 기색이라도 보이면 사우나 표를 주면서 다녀오라고 하고 먹는 것도 제일로 비싼 것만 사주시고 저에게는 꿈만 같은 직장이었죠. 그분은 제 미래의 삶까지 걱정해주고 조언을 해주시는 그런 분이었습니다. 원래 2개월 계획이었는데 사장님께서 커피숍을 정리하는 기간까지 2년 반을 함께 동고동락을 했습니다. 지금 경영철학을 그분으로부터 많이 배웠습니다."

 

'제스티' 커피숍에서 일했던 경험을 신명나게 풀어내는 주호연 사장은 커피숍 사장님을 마치 친형제와 같은 존재로 생각하고 그에 대해서 감사한 마음을 여러 번 언급했다. 누구한테 감사한 마음을 갖는다는 것은 그만큼 순수하기 때문일 것이다. 커피숍에서 경험 2년 반은 그가 사업에 매료를 갖게 된 배경이 되었단다. 학업을 뒤로하고 군입대후 2년이란 시간은 대학을 자퇴하게 되는 전기가 되었다.

"지금도 그렇지만 배움에 대한 미련은 조금도 없어요. 사람이 모두 다 똑같은 생각 똑같은 행동을 하면 세상이 제대로 돌아갈까요? 저같이 공부에 관심이 없는 사람은 공부 대신에 다른 걸 하면 되잖아요.“ (웃음)

 

2006년 한창 독일 월드컵이 시작되기 한달 전 즈음하여 지인으로부터 월드컵 응원도구인 중국산 '악마뿔 머리띠' 판매 제안을 받았다. 내용인 즉 지인이 중국으로부터 수입단가인 1,000원에 2,000원의 마진을 붙여서 주호연 사장에게 넘기면 주 사장은 7,000원을 붙여서 10,000원에소매 판매를 한다는 제안이었다.

 

"그야말로 대박이었습니다. 반신반의 하던 차에 친구가 돈의 일부를 보탤 테니 한번 해보자 라고 하더군요. 군산시내 한복판인 영동에서 창피함을 잊은 체 좌판을 벌여 월드컵 내내 노점상을 했습니다. 제가 얼굴이 쪼매 잘 생겼죠.(웃음) 특히 젊은 여자분 들이 많이 사갔습니다. 그때 노점상 경험을 계기로 사업은 쉽다고 생각을 하게 된 것 같습니다."

 

"사람은 함부로 믿을게 못되더라고요"

 

탄력 받은 그의 장사수완은 그가 아는 형님의 친구와 중국산 여성 옷 유통을 하게 되는 계기가 되었다. 인상 좋은 형님의 친구 첫 만남부터 매우 친절했고 상냥했다. 중국에서 수입한 여자 옷은 나운동 일대 상가에서 노점을 통해서 팔려나갔다. 1차로 수입한 여성 옷 100여벌은 단 이틀 만에 팔려나갔다.

 

"그때 당시 군산 경기가 매우 좋았습니다. 진열대에 진열해놓기가 무섭게 팔려나갔습니다. 2차 수입했던 500여 벌도 바로 팔려 나갔고 31,000여 벌도 어렵지 않게 팔려나갔습니다. 하지만 수고로움에 반해서 저에게 떨어지는 이익은 거의 없었습니다. 그분은 돈을 저는 영업을 하는 것으로 동업을 했지만 어린 제가 뭘 모른다는 생각으로 저의 이익금을 그 분이 모두 취한 거였죠. 엎친 데 덮치는 격으로 4차 수입분 5,000여 벌에서 하자가 발생한 겁니다. 판매를 할 수가 없었고 사간 분들한테서 항의를 받고 뒷수습 하는데 많은 애를 먹었습니다. 제가 투자한 돈이 없었으니 망정이지 투자를 했더라면……, 지금도 그때 생각을 하면 끔찍합니다."

 

그때 동업의 경험으로 하여금 사람에 대한 관계를 돌아보게 되었다고 말한다. 자기와 만나서 관계를 맺는 사람과는 친해야만 하고 서로 무조건 믿어야한 하는 그의 생각이 그렇지 않을 수도 있겠다는 좀 더 농익은 생각으로 변했단다.

 

자동차 회사에서의 5

 

사람에게 한번 호되게 치이다 보니 사업하기에 다소 지쳤었다 보다 그는 한국 지엠 군산공장 하청 업체 직원으로 입사를 하였다. 매일 매일 조이고 닦고 하는 단순한 작업장에서 특별함은 찾지 못했지만 퇴근하고 술 한잔 하는 것이 그에게는 커다란 기쁨이었다. 술 한잔 하는 것이 뭐 그리 대단한 거라고 생각할지 모르겠지만 그에게는 동료들과의 관계성에 큰 의미를 두었음이리라.

 

"지금 생각하면 그 당시 무슨 생각으로 사회생활을 했는지, 참으로 철딱서니 없었던 것 같습니다. 하루하루 목표가 없었습니다. 벌어놓았던 돈이 조금 있었고 고되지 않았던 회사생활에 그저 동료들과 술 한잔으로 하루를 때웠으니 말이죠."

 

5년여의 회사생활은 그에게는 요즘말로 숨기고 싶은 '흑역사'였단다. 자기 몸속에 흐르는 사업가의 DNA를 마다하고 월급에 안주하던 지난날 아니 그 보다도 목표 없이 하루하루를 살았던 지난 5년을 격하게 반성을 하고 있었다.

 

"어느 날 제 자신을 돌아보게 되었어요. 특별한 계기는 없었고요. 그냥 목적 없이 사는 제가 너무 싫었어요. 아마도 사업가적인 기질을 5년간 내면에 숨겨져 있다가 어느 날부터 서서히 살아나지 않았나 싶어요.“ (웃음).

 

'친구란 무엇인가? 두개의 몸에 깃든 하나의 영혼이다' - 아리스토텔레스

 

때마침 그와 절친인 친구가 나운동에서 '도마'라는 고깃집을 운영하고 있었는데 밀려드는 손님들로 인하여 매일 매일 바쁜 하루를 보내고 있었단다. 아무런 생각 없이 친구를 찾아갔고 그는 친구에게 자기의 맹목적인 삶에 대해서 이야기 하던 중 친구는 "호연아, 너에게 '도마' 이름 빌려줄테니 식당 운영해보지 않을래?" 라고 제안을 했다.

 

사업이라면 자신이 있었지만 고기 육질로 모르고 음식 조리도 못하는 상황에서 식당 운영은 다소 부담이 되었다. 하지만 열정적인 친구의 제안에 그만 덜컥 수용을 했다.

 

"2호점을 운영 해보라는 친구의 제안이 매우 고맙기는 했지만 음식하고는 젬병인 제가 무엇을 할 수 있을까? 라고 걱정은 했지만 친구의 열정적인 설명에 얼떨결에 '오케이' 해버린거죠. 그날 밤 괜히 한다고 했나? 잘 할 수는 있을까? 후회를 하면서 두 눈으로 꼬박 날을 샜습니다."

 

퉁퉁 부은 눈, 멍한 상태로 회사 출근하고 사직서를 제출했다. 주변에서 며칠 동안 만류를 했단다. "회사 나가봐라 너를 맞이하는 것은 혹독한 실패이다." 지인들의 충고, 조언은 저 하늘에 던져버렸다. '이제는 회사가 아닌 내 사업이다. 나에게 충고했던 이들에게 내가 일어서는 모습을 보이리라.'

 

"5년 동안의 회사생활로 정신상태가 완전히 망가졌습니다. 의욕과 의지 상실이었었죠.(한숨) 그런 저의 모습을 본 친구는 제게

이생곤님 기사 더보기
0개의 댓글이 있습니다.▼ 닫기
댓글 목록
댓글 등록

등록


카피라이터

주소 : (우)54020 전북 군산시 절골3길 16-2 , 출판신고번호 : 제2023-000018호

제작 : 문화공감 사람과 길(휴먼앤로드) 063-445-4700, 인쇄 : (유)정민애드컴 063-253-4207, E-mail : newgunsanews@naver.com

Copyright 2020. MAGAZINE GUNSAN. All Right Reserved.

LOGIN
ID저장

아직 매거진군산 회원이 아니세요?

회원가입

아이디와 비밀번호를 잊으셨나요?

아이디/비밀번호 찾기